드디어 케언즈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남은 짐들을 정리하고 QV apartment를 함께 나서던 그 길, 가방을 두고 와 또다시 돌아갔더랬다. 칠칠맞은 날 위해 내 가방을 들고 먼 길 나와준 하우스메이트 덕분에 겨우겨우 스카이 버스를 시간 맞춰 탈 수 있었더랬다.
정신없던 나에게 달달한 게 필요할 것 같다며 네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건넸던 카페모카조차 버스에 들고 타지 못해 한 번에 힘껏 들이켰었지. 그렇게 스카이버스를 함께 타고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주면서도 내내 날 걱정하던 너였다. 이전까진 걱정을 티 내지 않던 너였기에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줄 몰랐네. 생각보다 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구나, 너. 누군가를 걱정시키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건 좀 기분좋네. 고마워, 덕분에 무사히 공항까지 와서 비행기 탈 수 있었어.
혹시나 해서 위탁수하물을 40kg 추가해뒀지만 여기서 10kg가 더 넘었다. 다혜가 브리즈번 갈 때 위탁수하물이 초과됐다는 말을 듣고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나도. 반포기 상태로 150불을 더 결제했다. 짐을 쌀 때마다, 수하물의 무게를 확인할 때마다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한 나의 모습이 숫자로 보이는듯했다. 멜버른으로 돌아갈 때 즈음 내 욕심의 무게는 얼마나 더 늘어있을까.
시간은 무색하게도 아쉬움을 원동력삼아 빠르게 흘러가버렸다. 케언즈로 떠나는 날을 벌써 마주하게 될 줄이야.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설렘보다 멜버른에 두고 온 모든 것, 감정들까지 나를 붙잡았다. 떠나고 싶은 마음보다 여전히 머물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이럴수록 더 떠나야 한다. 이건 예상치 못한 경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일 테니.
함께 일했던 매니저 세바스찬이 해줬던 말이 기억난다. 너는 지금 여행 중이며, 이별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너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간을 마음껏 즐기라고. 너는 좋은 사람이니 어딜 가든 사랑받을 거란 그 말들. 세바의 말은 울지 않으려 했던 나를 결국 울려버렸다.
울고 있는 나에게, 우린 모두 호주에 있으니 언젠가 또 마주할 수 있을 거란 당신의 위로, 자신의 연락처를 알고 있으니 친구로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하라던 당신의 말이 너무나 고마웠다. 레퍼런스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는 당신과 오너인 제이슨의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케언즈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걱정을 덜어줬다.
고마운 일들의 연속이다.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아니, 적어도 나에겐 따뜻했던 대부분의 이들 덕에 멜버른을 그리워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영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여러 번 물어봐야만 겨우 이해했던 나에게. 충분히 성가실 수 있던 나를, 그럼에도 따뜻했던 당신들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케언즈가 싫다는 것은 아니다. 멜버른에 도착하고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이러한 감정들을 느꼈던걸 생각한다면 케언즈에서의 시작이 꽤 나쁘지 않은 편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곳은 아직 비수기라 일을 구하기가 다른 때보다 쉽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바꿀 순 없으니 내가 해볼 수 있는 선에선 최선을 다해봐야겠지.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다 보니 1월까지 T에게 보내려 했던 프로젝트 파트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해두고선 1월 한 달 동안 T에게 아무것도 보내지 못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2월 두 번째 주 전까진 적어도 하나는 완성해서 보내야지. 나를 위한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흔쾌히 함께해 준다 했던 너에게도 도움이 될 프로젝트일 테니, 나 좀 더 열심히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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