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세대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태까지 외향적이며 활달한 사람들을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판단하곤 했다. 그들은 다양한 대면활동에 참여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사람들 앞으로 나와 그들의 목소리를 냈다. 상대적으로 크게 들리던 그들의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듯했으며, 세상은 그들을 칭찬했다. 반면 대면활동을 그리 즐겁게 여기지 않았던 무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들의 일을 해나갔으나 외향적 인간들에 비해 크지 않았던 그들의 목소리는 쉽게 묻혔으며 세상은 그들에게 더 외향적일 것을 강요하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감염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비대면, 비접촉’이 트렌드로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내향적인 사람들, 즉 사회에서 질타받았던 그들의 행보가 이제는 본받아야 할 세계적 트렌드가 된 것이다. 그들은 단지 묵묵히 그들의 길을 간 것뿐, 변화에 적응하려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사람들을 대면하며 일을 할 때, 그들은 그들의 방식, 즉 비대면으로 일을 처리한 것뿐이다. 물론 사회에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대면을 선호했기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한 걸림돌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세상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세상은 내향적인 사람들의 방법을 따르려 하고 있다. 대면 방식을 피하려 하기에 모든 대면 활동 취소는 장기화되어가고 있지만, 대면활동을 강조해왔던 사회는 그에 대한 대응책을 찾아 나서는 단계까지만 도달했을 뿐이다.
나는 우리가 2020년에 와서 찾으려고 하는 ‘언텍트‘ 방식을, 놀랍게도 2016년도부터 2년간 이미 경험했다. 사회로부터 멀어져야만 하는, 은둔생활을 해야만 하는 수험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것을 ’언텍트’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의 세계에서 ‘언텍트’란, 오래전부터 정착해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강의부터 시작해서 스터디 모임, 정보공유 등. 모든 것이 언텍트로 진행이 되었다. 모순적이게도 사회에서 소외될수록 언텍트 방식의 사용빈도는 비례관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사회가 소외시켜왔던 부류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소리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면, 이제는 소리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코로나는 모든 개체의 평등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여러 방면에서 인간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일 때마다 복합적인 감정이 공존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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