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예술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 아직도 예술의 추상성이 익숙지 않아 매번 한두 마디의 문장으로 정의를 하려 하는 나의 모습으로부터 오는 질문이다.
고민하지 어떤 게 예술가의 삶. 누구 위에 있기 위해선 존재하지 않아.
고민하지 아무도 죽이지 않는 노랫말. 그 앞에선 어떤 게임도 시작 버튼 눌리지 않아.
SLEEQ - Here I go
최근에 내 안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노래 가사 중 일부. 예술이란 이름의 허용은 시적 허용처럼 단순한 것, 혹은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 예술적이라는 허용의 범위는 다른 요소에 대한 허용범위보다 더 넓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점을 이용해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예술이란 이름을 남용하는 사례를 간혹 발견하곤 한다.
그렇다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짓누르는 것에 대한 것도 가능할까. 예술이란 단어를 와일드카드로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예술은 곪아간다. 그들로 인한 누적된 피해자들이 모여 미투 운동을 일으켰지만, 유감스럽게도 예술 뒤에 숨었던 사람들은 이제 예술로 얻은 권력 뒤에 숨어버렸다. 비겁한 예술은 예술인가, 타인을 갈아서 만든 예술은 예술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물을 때, 정확한 설명 없이 예술이라는 단어를 내민다면 모순적이게도 그것이 진정한 예술인지 의심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하는 예술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간혹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꽤 위험한 발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예술가라는 타이틀에 자아도취되어 당당히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곤 한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예술은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 예술이란 것은 최종적으로 관객이 보는 행위를 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당신은 예술을 하는가, 아니면 예술하는 척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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