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이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딨겠느냐만서도 또다시 이런 식으로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인에게 어른스럽게 비치는 것을 즐기면서도 결국엔 또다시 어른이 되지 못한 모습이 비집고 나와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어버리곤 한다.
모국어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한정된 외국어 실력은 가끔 성대를 도려내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음과 모음 하나의 차이로 그 문장이 뿜어내는 분위기가 달라지는 한국어와 달리, 외국어라는 존재는 자꾸만 나의 표현을 두루뭉술하게 바꿔버린다. 물론 외국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외국어를 습득해가는 과정에서 오는 모국어와의 괴리감이 나를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지게끔 한다는 것이다.
모국어라는 것이 의외로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생계를 이어가 주기까지. 심지어는 타지에서 모국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기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모국어가 어떻게 들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최근에 어떤 외국인이 한국어가 듣기 좋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한국인에게도 한국어는 아름답게 들릴 수 있을까?
한국인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어린 시절부터 희로애락을 모국어를 통해 경험하다 보니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결국 아무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 기쁘고 행복한 일을 한국어를 통해 주고받기 도하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 또한 한국어로 주고받는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한국어로 이별을 말하거나 들었으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사가 한국어로 떠들어대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 한국어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을 수도 있으며, 이름만 들어도 분노가 차오르는 범죄자들 또한 미디어를 통해 한국어로 변명을 해대고 있다. 우리가 한국어에 대해 좋은 감정만 간직하기엔 너무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모국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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