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미지도 누군가가 골라낸 이미지일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를 잡는다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들은 사람의 손을 거치는 순간 객관적 요소를 상실하게 된다. 사람으로 인해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생각이 첨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어떠한 의심 없이 객관적이라고 여기곤 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순간적으로 잡아낸 것이 흔히 알고 있는 사진의 의미지만, 프레임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준할 수 있다는 것이 사진의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즉, 사진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은가에 따라, 사진은 같은 것도 다르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당했을 때
그 건물에서 간신히 피해 나왔던 사람들이나 근처에서 그 장면을 그대로 봤던 사람들은
처음 그 공습을 설명하면서 “믿을 수 없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영화 같다”라고 말했다.
미디어는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때론 극적인 요소를 담아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무장되어있다는 느낌도 들곤 한다.
세상엔 ‘영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빈도수가 점점 늘어나는 듯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일까. 어쩌면 그러한 미디어에 꾸준히 노출되고 있는 사람들은 꾸준히 무뎌져 극적인 것이 더 이상 극적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게 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미디어 이미지가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는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진이 가장 자극적이다.
프레임에 고정된 기억, 그것의 기본적인 단위는 단 하나의 이미지이다.
정보 과잉의 이 시대에는 사진이야말로 뭔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자
그것을 간결하게 기억할 수 있는 형태이다.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들어진 미디어는 생각을 하지 않게끔 하며, 글로 이루어진 미디어는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진이라는 미디어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우리가 적당한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한다. 다시 말하면 적당한 생각이란, 적당한 선에서 생각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며, 생각은 하되 우리의 생각이 어느 시점에 다다랐을 때, 그 한계를 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적당한 생각은 내가 사고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줌과 동시에 적당한 선에서 생각을 끝마칠 수 있기에 적당히 에너지 소모를 하면 된다. 다시 말해 사진은 내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적당한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는, 가성비가 좋은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재빠른 재주를 갖춘 덕택에 사진은 객관적인 기록인 동시에
개인적인 고백이 될 수 있으며, 실제 현실의 특정한 순간을 담은 믿을 만한 복사본이자
필사본인 동시에 그 현실에 관한 해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뛰어난 문학이 그처럼 되기를 갈망했으나,
문학적인 의미에서 결코 성취해 내지 못했던 그런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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