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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 , Nobody Knows)' 후기

by 이 장르 2020.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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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랐다. 아니, 모른 체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통념에 휩싸여 무언의 압박에 책임감을 내놓아야 할 것을 무의식 중에 느꼈기 때문이겠지. 사회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났다.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부재의 장기화로 인해 무기력과 분노로 변해버렸다.

 

 

어느 곳을 향한 분노일까. 엄마를 향한 분노일까, 그들을 외면한 사회를 향한 분노일까. 어디서든지 분노는 생겨 날 수 있으며, 결국 그 분노는 그들의 어머니를 향해 수렴했다. 아이들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사회로부터 그렇게 배워왔을 테니.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이 일본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가장 먼저 질타받았던 대상은 그들의 어머니였다. 물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어른으로서의 직무를 버렸기에,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알기에, 어머니는 질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하나만 더 묻자. 다섯 아이를 낳게 한 다섯 명의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그들의 분노는 왜 한 명의 어머니로 수렴되었는가.

 

 

일본의 미디어는 철저히 그들의 아버지를 아이들보다 우선적으로 보호했다. 일방적 책임의 형태에 익숙해진 일본 사회 또한, 그들이 내뿜는 단면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책임의 범위를 축소할수록 책임의 강도가 강해지며, 그로 인한 피해자의 범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대상이 분산되어있었다면, 아이들은 짙은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아빠라면, 당신이 어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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