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했는데, 사회는 행복했을 리 없다고 한다.
네이버 영화 한줄평 hasi****
가끔은 행복이란 게 순서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가족이란 단어를 우선시할 것인가, 그 의미를 우선시할 것인가. 어쩌면 태어나자마자 정해지는 가족이란 건 천륜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겐 벗어나고 싶은 덫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했지만 온전한 모습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사회통념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외면당 한자들의 공동체. 사회는 그들이 가족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작고 작은 구멍으로 숨다 보니 다다른 곳.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그들. 아니, 사실 막다른 길에서 마주한 것일지도.
“당신 오늘 출근이 늦네.”
“‘워크 셰어’를 한대.”
“그게 뭔데?”
“월급 주기 힘들다고 열 명은 오후에만 나오래.”
“다 함께 조금씩 더 가난해지는 거네?”
“뭐 그런 거지.”
가족이란 무엇일까. 사회의 틀 안에서 의무적으로 이뤄낸 공동체를 말하는 것일까,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낸 공동체를 말하는 것일까. 가족은 선택받는 것인가, 선택하는 것인가.
모순적이게도 훔쳐(万引き) 만든 가족이, 일반적인 가족보다 더 사회가 원하는 가족에 가까웠다. 가족으로서의 경계를 하지 않기에 온전히 서로를 인정해줄 수 있었던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거봐. 내 말이 맞았지? 그렇게 오래는 못 갈 거야.”
“그건 알지만 피가 안 이어져서 더 좋은 점도 있잖아.”
“괜한 기대를 안 하게 되는 건 좋지.”
“맞아, 그래.”
아빠이길 포기했기에 비로소 아빠가 될 수 있었던 남자. 언젠간 이 불완전한 가족이 사라질 때,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그의 방식대로 가르쳐준 것이 아닐까.
“아이에게 도둑질시키고 양심의 가책은 없었나요?”
“나는... 그것 말고는 가르칠 게 없었습니다.”
“왜 소년 이름을 쇼타라고 했나요? 당신 본명이잖아요?”
“그건...”
쥬리가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곳은 현관문 앞. 모성애는 낳아야 생기는 것인가, 함께 있음으로써 생겨나는 것인가. 사실 모성애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단지 우리가 칭하는 모성애라는 것은, 처음에 생겨난 책임감과 나중에 생겨난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결합해서 생겨난 관계의 특수성일 뿐.
쥬리는 모성애라는 허구적 요소의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피해자다. 자신의 이름까지 포기하면서 린으로 살아가는 쥬리는 어쩌면 사회가 맹신하고 있는 허구를 깨닫고 부정하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그러니까 다시 말해, 낳는다고 모두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집에 가고 싶댔어요? 린이?”
“네, 쥬리 가요.”
“그런 말 할 리가 없어요.”
“아이한테는 엄마가 필요해요.”
“엄마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죠. 낳으면 다 엄마가 됩니까?”
“하지만 안 낳으면 엄마가 될 수 없죠. 당신이 아이를 못 낳아 힘들었던 건 이해해요. 부러웠어요? 그래서 유괴했어요?”
“그렇네요. 증오했던 것 같네요 엄마를...”
“두 아이는 당신을 뭐라고 불렀어요? 엄마? 어머니?”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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