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다음날이 빨간 날이라서 그런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긴 주말같이 느껴진다. 워낙 잡순이라 약속 없는 날엔 굳이 집 밖을 나가지 않아 평일인지 주말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로 격리했던 그 생활을 며칠간 거의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영상편집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당장 레이블 멤버들과 함께했던 촬영보 편집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으며, 지인 결혼식 영상편집도 빠르게 해내려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올라가야 하는 영상들, 그 사이에 틈틈이 플레이리스트 만들어 올릴 곡들도 수집하고 있기도 하고. 겸사겸사해보고 싶은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퇴사를 하고 시간이 생기니 어찌어찌 다른 일거리들이 생기는 걸 보니 적어도 난 굶어죽진 않겠다 싶었다.
영어 공부는 해도 해도 부족한 기분이다. 집에 앉아 계속 공부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하루 종일 영어만 잡고 있을 수도 없고. 하루 습관을 빨리 만들어 좀 더 알차게 움직여봐야겠다는 생각만 절실하게 든다. 그래도 코로나 걸린 이후 시작한 운동은 기특하게도 평일 주말 없이 매일 해내고 있다. 100일 챌린지를 하고 있는데 벌써 56일째라니. 확실히 몸이 달라진 게 느껴진다. 호주 가서도 운동은 계속해야지.
퇴사를 하니 확실히 기분이 좋다. 상쾌하다는 느낌보다는 평안하다는 느낌에 가깝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들, 그리고 또다시 밀물처럼 밀려와 그 빈 공간을 다시 채워주고 있으니 썰물의 허무함이 나에겐 설렘으로 다가와 주고 있다. 막혀있는 것을 뚫듯 어차피 흘려보내야 하는 것들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 이번엔 어떤 것들로 채워지게 될까. 그 사이에 남아준 몇 개의 조각들을 소중히 담아 가져가야지. 그렇게 담아온 지난 조각들도 꾸준히 내 곁에 머물러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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