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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월간 글노트22

2020. 12. 월간 글노트 영원한 비밀은 없다. 아니, 영원한 것은 없다는게 더 맞는말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는, 마트에서 파는 요플레처럼, 유통기한이 낙인처럼 찍혀나오는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영원을 갈망하곤한다. 존재하지 않는것을 원하는 것, 분명 헛된망상임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영원을 약속한다. 인간은 무엇때문에 영원함을 꾸준하게도 외치는걸까. ​ 늘 옆에있을것만같았던 존재가 하나둘 떠나간다. 분명 우리는 오랜기간동안 살아보지않았으면서도, 그 중 얼마되지않는 경험을 꺼내들어 현재에 그럴듯하게 끼워맞춰본다. 영원할것이라 예상한다. 아니, 어쩌면 영원하기를 바라는 방법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했듯, 영원하자는 약속은 보기좋게 빗나간다. 그러고보면 애초에 인생이 내가 예상한 방향으로 향한.. 2021. 1. 5.
2020. 11. 월간 글노트 ​ 쌀쌀해짐과 동시에 공허한 감정이 들어설 때, 무언가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아, 가을이 왔나 보다. 옷장에 있는 옷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얇고 소매가 짧은 옷들을 만지작거리며 날씨에 맞춰 옷장의 옷을 바꿀 때가, 벌써 돌아왔구나. ​ 옷장 문을 열었다. 올해 봄을 맞이하면서 넣었던 그때 그 설렘도 함께 들어있나 두리번거리다가 좋아하는 옷을 꺼내들었다. 잠옷 위에 옷을 걸쳐 입고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거울 앞에 섰다. 봄이 다가올 때 설레하던 내 모습을 그대로 꺼내온 듯, 그렇게 그때의 내가 눈앞에 서있었다. 그날의 기억을 그렇게나 찾았었는데, 허무하게도 그날의 코트 안주머니에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찾을 땐 지독하게 숨어댔는데 말이야. 시간에 묻혀 희미해질 때 즈음 나타난.. 2020. 12. 1.
2020. 10. 월간 글노트 마음이란 게 참 그렇다. 분명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데도, 그런 줄 알면서도 그렇게나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 모르겠더라. ​ 마음엔 크기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이란 게 어느 정도라고 물어볼 수도, 대답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스스로 기준을 정해두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흘러가다 어딘가에 고여버린 물웅덩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흐르기만 하는, 그래서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듯, 또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그렇게, 또 그렇게. ​ 이번 가을은 유난히 향이 좋다. 앙상한 것들의 향이 스며들듯 나의 곁에 머물러주는 기분이다. 집으로 오는 길, 간만에 마주한 새벽 공기는 차갑고 달았다.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끝을 .. 2020. 10. 22.
2020. 09. 월간 글노트 ​ 공기가 갑작스럽게 차가워졌다. 가을은 얼마나 머물렀다고, 또 어디를 그리도 급하게 가려는지. ​ 가을이 머물고 지나간 자리는 허전해서인지, 아니면 허무해서인지 다들 허한 마음을 감싸기 위해 긴팔을 꺼내 입는 것도 모자라 하나를 더 걸쳐 입는다. 떠나려는 가을의 끄트머리를 붙잡아보겠다며, 바깥으로 나와 남은 미련을 쥐어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이럴 수 있는 순간이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 ​ 순간순간,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하지만 그중에도 유난히 빛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너무나 찬란한 순간조차 시간에 흘려보내야 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간절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간절함만으로는 무언가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 아쉽든 아쉽지 않든, 어쩔.. 2020. 9. 28.
2020. 08. 월간 글노트 이때쯤이면 끝날 줄 알았던 비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결국 8월의 끝자락까지 대롱대롱 매달려왔다. 맑은 하늘을 온종일 본 날이 언제쯤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그래도 어떻게 알았는지, 우울해질 때 즈음 잠깐씩 얼굴을 들이밀고 안부를 알리는 하늘 덕분에 소소한 위안을 간간이 얻었다. ​ 벌써 9월이다. 작년 이맘때 즈음, 이때쯤이면 내 핸드폰 속 사진첩도 예정되어 있던 새로운 여행지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여행 일기를 쓰며 바로 얼마 전을 추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세상에 내 계획대로 되는 건 없구나. 새삼스레 세상의 수많은 어리석은 인간 중 하나가 나라는 걸 되새김질하게 된다. 꾸역꾸역 쥐어짜고 남은 일상을, 이쯤 되면 소중히 여길 법도 한데 말인데. 아직도 그렇게 당연하던.. 2020. 9. 1.
2020. 07. 월간 글노트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 속에서, 나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낄 줄 알게 되었고, 단조로운 리듬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방법 또한 깨닫게 되었다. 작년과 다르게 무작정 어딘가로 맘 놓고 떠나지 못하게 된 것이 답답하긴 하지만, 분명히 안에서 내가 놓친 것들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한다. ​ 요 근래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 자신. 그렇다면 좀 더 괜찮은 나와 함께 지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답변을 하나둘씩 찾아가 보려고 하는 중. 타인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나눠 사용했던 나의 시간을, 이제는 대부분 나와 함께 사용해야 하니 우리, 잘 지내야 해. ​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나에겐 수동적인.. 2020. 8. 13.
2020. 06. 월간 글노트 ​ 이전까지의 시간과 다르게 밋밋했던 한 달이었다. 물론 언제나 스펙터클할 순 없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한듯했던 나날들이었다. ​ 뜻밖의 일로 글 쓰는 수업을 한주 쉬게 됐다. 평일엔 일을 하고, 영어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과제는 주로 주말에 멱살 잡아 끌고 가듯 해냈는데, 과제들이 없어지니 주말이 텅 빈 기분, 말 그대로 공허했다. 아무리 책상 앞에 앉아 딴짓을 해도, 핸드폰을 수없이 들여다봐도 시간이 남았던 이상한 주말이었다. ​ 다른 영화를 찾아볼까, 아니면 책을 읽을까, 그도 아니면 글을 써볼까 생각을 하다가 그냥 쉬어보기로 했다. 쉬는 게 익숙지 않아 낯설기만 한 휴식의 순간이, 맞지 않은 옷을 입고 하루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불편했다. ​ 주말에는 어쩔 수 없이 집에.. 2020. 7. 21.
2020. 05. 월간 글노트 출근하자마자 온풍기를 틀기 바빴던 날이 얼마 전 같은데, 이제는 하루 종일 반팔을 입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 이맘때 즈음이면 이미 출장을 두세 차례 다녀오고도 남았을 시기. 세상은 예기치 못한 변수를 흩뿌려두고는 각자의 길을 찾아가 보라곤 하는 듯, 가끔은 그 불친절함이 당황스럽게 느껴지곤 한다. 인간은 관습을 좋아하긴 하지만, 또 새로운 환경에 내놓아두면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적응하고 또 다른 관습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놀랍기도 하고. 나 또한 앞으로의 환경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무언가 해내려고 하고 있으니. ​ 어릴 때 막연히 생각했던 2020년은 엄청난 미래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우리가 맞이한 2020년은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우리가 늘 해왔던.. 2020. 6. 5.
2020. 04. 월간 글노트 3월보다 빠르게 지나갔던 4월. ​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예정된 활동이며, 준비했던 자격증 시험이며 모든 것이 다 밀려버렸다. ​ 불행 중 다행인지, 덕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해내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정돈하며 앞으로 내가 무얼 해나가야 하는지 좀 더 명확해진 느낌. 올해가 마무리될 즈음엔 좀 더 성숙해진 나를 기대해도 되는 걸까. ​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늦은 시간이라 주변에 사람이 없기에 잠시 조심스레 마스크를 열어 너무나 오랜만에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뜬금없이 떠오르는 수험생 시절의 기억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지만 이젠 그 기억들을 음미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났구나 싶어 기분이 이상해졌다. ​ 지나보니 분명 스스로가 좀더 성숙.. 2020. 5. 11.
2020. 03. 월간 글노트 ​ ​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3월하고도 22일. 생각지도 못한, 많은 축하를 받아들고있자니, 내것이 아닌걸 들고있는 기분이기도하고. 분명 남들에겐 달력안의 검은숫자로 적혀있는, 흔쾌히 지나칠수도있는 수많은 생일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조그마한 노력일지라도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보내주는 몇마디를 조심스레 풀어볼때면 나또한 이렇게 따뜻할수있을까 생각해보게되기도하고. 삶의 진도가 나갈수록 힘을 들여야 할 부분은 점점 늘어나고 각자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게 때로는 벅찰때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새로운 숫자를 마주할때마다 시간 한조각을 내어주는 것조차 쉽지않으니까. 언제까지 우리, 서로의 시간을 떼어줄 수 있을지는 알수없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함께해주려는 그 향기에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 2020.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