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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135

절멸선언(絕滅宣言) 지구의 동물 10 중 4, 당신들 인간. 10 중 6, 당신들이 키우는 가축들. 나머지 쥐꼬리만큼의 야생동물들은 쫓겨다닌다. 그것도 모자라 당신들은 숲을 불태우고 약탈하다가 바이러스에 걸렸다. 인간이 품는 욕심마다 지구의 암으로 번지고, 인간이 건드리는 동물마다 좀비로 변한다. 팬데믹? 인간 씨, 농담도 잘하시네. 1760년부터 당신들은 팬데믹이었다. 우리의 운명은 정해졌다. 절멸의 절벽을 향한 고속 질주. 자, 이제 죽을 시간. 가는 마당에 유언을 남기겠다. 인간은 똑똑해지길 원했고, 원한다. 현재 인간은 충분히 똑똑해졌고, 이기적인 존재가 되었다. 파괴를 즐겨하며, 그것에 자부심을 가진다. 혹은 누가 얼마나 파괴적인가에 경쟁심을 느끼기도 하는 듯하다. 우리에겐 트로피, 다른 종에겐 생존의 위협. 같은.. 2020. 9. 16.
세계관의 굴레 ​ 나의 정체성은 내가 쌓은 결론의 총합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내 생각에 대한 결론을 많이 내려야 한다는데,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 에너지를 소모하며 지속적으로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생각 자체를 회피하거나 도중에 멈추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구성원인 우리가 사유하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듯하다. 사유를 방해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개개인의 정체성, 그리고 자아를 형성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공부라는 한 가지의 길로 통한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면서, 성공이란 것은 세상에서 지정해주는 단 몇 가지 길만 있다고 한정 짓게 되는 획일주의에 중독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정체성의 결론은 본인이 어떤 삶을.. 2020. 9. 10.
일기를 쓰려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 오랜만에 일기를 써보려고 빈 화면을 띄웠다. 이상하게도 나는, 글을 쓸 때 종이에 적어 내려 가기보다 타자로 깜빡이는 커서를 밀어 글자를 하나하나 완성시키는 것을 더 선호하는듯하다. 글쎄, 내 생각을 바로바로 적어 내려 갈 수 있어서일까. 그런 것 같다, 아마도. 아날로그틱한 것을 좋아하지만, 펜촉의 움직임보다 커서의 깜빡임이 더 좋은 건 모순일까, 취향일까. 최근에 타자 소리가 유난히 많이 나는 키보드를 샀다. 나름의 아날로그 감성을 살려보고 싶었나 보다. ​ 어쩌면 아무 일도 없는, 이 하루가 더 몽글몽글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기억될만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이벤트처럼 나타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기본적으로 일상의 연속, 그러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리듬 몇 구간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으.. 2020. 9. 7.
돈을 내진 않았지만 기분 좀 낼게요 그냥 그럴 때가 있다. 듣는 음악에 따라 기분이 바뀌는 그런 날. ​ ​ 글을 쓸 땐 주로 단조로 이루어진 곡을 자주 틀어놓게 된다. 글을 쓰는 동안 차분하게 감정을 유지할 수 있기도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듯한 나의 글은, 주로 살짝 그늘진 음악이 겹겹이 쌓여 완성되곤 한다. ​ 하지만 사람 기분이란 게 일정한 것을 오랫동안 유지하기가, 아직 나에겐 어렵기도 하고. 그래서 내 감정이 느티나무 끄트머리처럼 축 처져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끔 경쾌한 곡을 꾸역꾸역 찾아 듣곤 한다. 이렇게 가끔 통통 튀는 리듬을 듣고 있자면, 지금처럼 시답지 않은 말을 줄줄이 늘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하던걸 멈추고 아무 말이나 끄적이고 있는 지금 내 모습. ​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중에, 지금보다 조금 더 어른이 .. 2020. 9. 3.
2020. 08. 월간 글노트 이때쯤이면 끝날 줄 알았던 비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결국 8월의 끝자락까지 대롱대롱 매달려왔다. 맑은 하늘을 온종일 본 날이 언제쯤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그래도 어떻게 알았는지, 우울해질 때 즈음 잠깐씩 얼굴을 들이밀고 안부를 알리는 하늘 덕분에 소소한 위안을 간간이 얻었다. ​ 벌써 9월이다. 작년 이맘때 즈음, 이때쯤이면 내 핸드폰 속 사진첩도 예정되어 있던 새로운 여행지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여행 일기를 쓰며 바로 얼마 전을 추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세상에 내 계획대로 되는 건 없구나. 새삼스레 세상의 수많은 어리석은 인간 중 하나가 나라는 걸 되새김질하게 된다. 꾸역꾸역 쥐어짜고 남은 일상을, 이쯤 되면 소중히 여길 법도 한데 말인데. 아직도 그렇게 당연하던.. 2020. 9. 1.
나이에 비해, 나잇값의 비애 ‘나잇값’을 해내는 것이 이전보다 더 퍽퍽해졌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숫자는 뭐가 그리 바쁜지. 꾸준히 늘어가는 숫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정표 없는 갈래길을 수도 없이 선택해오면서도, 여전히 선택에 익숙해지지 않는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을러지고 싶다. 너무 빠른 속도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다가 하나둘 나이를 따라가는 것을 보니 나도 불안함이 밀려온다. 기분 탓인 걸까, 아직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고 싶은데. 아니, 잠깐이라도 멈춰보고 싶은 걸까. 천천히, 혹은 쉬어가도 좋다고 말하는 책들이, 세상에 수없이 나오고 있다. 물론 나도 천천히, 음미하면서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이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은 천천히 할.. 2020. 8. 26.
독재의 끝 영원한 독점 권력은 없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소련도 어느 날 붕괴됐다. 우리는 그들이 무너졌다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무너졌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분명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 우리는 공산주의가 아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 물론 단순히 정치적 이슈로만 끝나면 좋으련만, 이 모든 것들은 당신들이 그렇게나 관심을 가지는 경제를 한 번에 뒤흔들만한 요소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환율부터 시작해서 유가, 기업의 흥망, 당신들이 그렇게나 온 정성을 다해 지켜보고 있는 주식시장까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를 당연시 받아들였고, 꽤 오랜 기간 동안 익숙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 조금 더 깊게 .. 2020. 8. 18.
2020. 07. 월간 글노트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 속에서, 나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낄 줄 알게 되었고, 단조로운 리듬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방법 또한 깨닫게 되었다. 작년과 다르게 무작정 어딘가로 맘 놓고 떠나지 못하게 된 것이 답답하긴 하지만, 분명히 안에서 내가 놓친 것들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한다. ​ 요 근래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 자신. 그렇다면 좀 더 괜찮은 나와 함께 지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답변을 하나둘씩 찾아가 보려고 하는 중. 타인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나눠 사용했던 나의 시간을, 이제는 대부분 나와 함께 사용해야 하니 우리, 잘 지내야 해. ​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나에겐 수동적인.. 2020. 8. 13.
무지와 가능성, 그 어디즈음에서 무지(無知)하다는 것은 주로 부정적인 어감을 지닌 채 세상에 남겨진다. 사람들은 무지하기를 꺼려하며, 자신이 무지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부끄러움에 그것을 숨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곤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무지하다는 것은 무비판적인 수용과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무지한 태도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로 무지하다는 표현을 뭉뚱그려 붙이곤하지만, 사실 무지하다는 것은 세세하게 나누어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어느 부분에서는 무지하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당연시 받아들이는 부분에 대하여, 우리는 무지한 것이다. 지배계층은 피지배층을 무지하다고 지칭하며 한심하게 여기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영원히 무지 속에 잠겨있길 바란다. 그.. 2020. 8. 3.
우리가 행복에 집착하는 이유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왜 우리는 평생에 걸쳐 행복을 노래하는가. 행복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그러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에 대해 흥미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샀지만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짐으로써 더 이상의 흥미가 없어지는 것과 같이.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늘 새로운 장난감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행복을 찾아대는 것을 보면,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행복의 기준치를 넘겨본 적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이전에 설정해뒀던 행복의 기준치를 이미 넘어버려 새로운 행복의 기준치를 만들어냈거나. 행복이란 것이 마트에 진열되어있는 장난감과 같이 인생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요소라면.. 2020. 7. 27.
익숙해진다는 건 우리가 어린 시절,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가 난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해서 그 다음번 다쳤을 때에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침으로써 느껴지는 아픔은 고통의 정도만 다를 뿐이지,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은 언제나 같다. 우리가 어린이로서 여러 해를 거치며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는 하나, 어른도 상처를 받는다. 상처라는 것이, 아무리 받아도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인간이란 게 참 게을러서 좋은 것은 금방 받아들이고, 적응해내며, 익숙해지지만, 아무리 잦은 고통을 겪는다 해도 무뎌지지 않는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고통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발악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세상을 살아가면서 익숙해지는 게 있을까 싶다. 무뎌지는 것일지, 아프지만 관성의 법칙에 의해 별 탈 없이 지나가는척하는 것일지. 살아.. 2020. 7. 23.
2020. 06. 월간 글노트 ​ 이전까지의 시간과 다르게 밋밋했던 한 달이었다. 물론 언제나 스펙터클할 순 없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한듯했던 나날들이었다. ​ 뜻밖의 일로 글 쓰는 수업을 한주 쉬게 됐다. 평일엔 일을 하고, 영어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과제는 주로 주말에 멱살 잡아 끌고 가듯 해냈는데, 과제들이 없어지니 주말이 텅 빈 기분, 말 그대로 공허했다. 아무리 책상 앞에 앉아 딴짓을 해도, 핸드폰을 수없이 들여다봐도 시간이 남았던 이상한 주말이었다. ​ 다른 영화를 찾아볼까, 아니면 책을 읽을까, 그도 아니면 글을 써볼까 생각을 하다가 그냥 쉬어보기로 했다. 쉬는 게 익숙지 않아 낯설기만 한 휴식의 순간이, 맞지 않은 옷을 입고 하루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불편했다. ​ 주말에는 어쩔 수 없이 집에.. 2020.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