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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135

탈성장, 그리고 돌봄의 책임 ​ 탈성장에 대한 커다란 오해 가운데 하나는 기존 체제 내에서 마이너스 성장이 이루어지는 역성장과 탈성장을 혼동하는 것이다. 탈성장은 성장률을 기준으로 경제활동을 평가하는 체제 자체와 소비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적 연대 속에서 검소한 풍요를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코로나19처럼 예기치 않은 재난으로 발생한 성장의 둔화나 경제축소는 탈성장이라 볼수 없다. 탈성장은 삶의 방향을 바꾸려는 의지와 노력에 수반되는 전환이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의지와 노력을 이끌어낼 사회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 백영경 '탈성장 전환의 요구와 돌봄이라는 화두' ​ 성장이라는 것의 동력은 인간의 욕심이다. 오랜기간동안 인간의 욕심만으로 유지되었던 발전에 인간 외의 존재들을 위한 배려는 그어느곳에도 없었다. 다시말.. 2020. 11. 9.
범 내려온다 ​ 그렇게나 사람들이 두려워서 외면했던 범이 내려온단다. 하지만 사람들이 찾아주지 않아 지독히도 외로웠던 범은, 자신을 찾는 목소리를 잘못 듣고 내려오면서도 행복해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어쩌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범은, 어쩌면 여느 사람보다 나은 동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의 옛이야기에 범을 넣으려 했을 수도 있고. 매번 등장해 친근하기에 그만큼 두려움을 줄 수 있었던 범이었다. 범은 열등감이 없었다. 인간을 사랑했다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향한 인간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고, 두려움을 이용해 대접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지닌 이점을 악용하지 않.. 2020. 11. 5.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줘 ​ "나는 시인이야. 나는 미래를 보고 과거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야. 과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시인이란 말이야." "어디 죄수가 판사 검사를 돈으로 살 수가 있는 거야?" "이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다고." ​ ​ 세상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은, 무엇으로 설정해두었을 때 가장 이상적일까. 오늘을 기준으로 내일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아름답게 꾸려낸다 해도 과거의 범죄는 지워지지 않는다. 과거도 자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며, 결코 범죄자들의 범죄행위를 미화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범죄가 많았던 80년대, 그리고 그 시기보다 범죄는 줄었다지만 더 지능적이고 악랄해진 현대의 범죄. 반면 그 당시보다 턱도 없이 낮아진 형량과 하늘 높이 치솟아 끝없이 고공질주 중인.. 2020. 11. 3.
숨가쁜 날들이 지나가고 홀가분해졌다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졌다. 벌써 겨울이라니. 오늘도 여전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밝았던 날보다 어두웠던 날들이 더 많았기에 오히려 이런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어두운 순간을 잘 버텨줬던 지난날의 나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 여름에서 가을로, 또 겨울이 되기까지의 통로를 지나는 중. 이 시국이 되기 전에는, 그러니까 분명 작년까지는 선선한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사소한 밥을 먹고, 카페를 가기보단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산책을 했던 나날들이 이제는 멀게만 느껴지는 게 서럽기도 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던 나도 가을향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는 순.. 2020. 10. 30.
고민을 적었더니 고민이 적어졌다 우리는 서로 삶의 속도가 달랐기에, 서로에게 발걸음을 맞추지 못했던 걸까. ​ 어렵다. 노력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을 것만 같아서. 불안정한 리듬을 타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끝까지 잘 버틸 수 있을까. 다짐을 하고 싶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것이 눈에 밟혀, 나 또한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기에. ​ 잔잔하던 모든 것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하루가 되어버렸다. 나는 무얼 위해 달려왔었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지난날 나의 고민들이 하나둘 떠오르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게 고민했던, 그 생각들은 다 어디로 갔나. 옷장 끄트머리 속에, 혹은 나프탈렌 향이 배어버린 외투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고민들을 적어 내다 보면 고민이 지금보다 적어질까. ​ 그중에 하나, .. 2020. 10. 27.
세대차이 ​ 퇴근길에 제 딸을 데리러 온 큰딸에게 그것이 참 노여웠다고, 노인을 아무도 거들지않는 세태가, 심지어는 비웃기까지 하느느 사람들이 참 징그럽더라고, 생각같아서는 비아냥거리는 인간을 쫓아가서 뒤통수를 갈겨주고 싶더라고 말하자 딸이, "엄마, 툭하면 악쓰는 노인들도 징그럽기는 마찬가지야." 실실 웃음기까지 비치며 말하는데,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더군다나 현관문을 나가면서 하여간 노인들 갑질이란, 아휴우, 진저리까지 치던 것이다. - 공선옥 '저물녘' 각박한세상.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수없기에, 그럴만한 여유가 없기에. 누구를 탓할수도없는 각박함. ​ 확실히 노인에게 냉정한 세상이다. 그렇다고해서 젊은이들에게도 따뜻하진 않은 세상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어쩔수없이 냉정함을 학습하게 .. 2020. 10. 23.
2020. 10. 월간 글노트 마음이란 게 참 그렇다. 분명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데도, 그런 줄 알면서도 그렇게나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 모르겠더라. ​ 마음엔 크기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이란 게 어느 정도라고 물어볼 수도, 대답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스스로 기준을 정해두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흘러가다 어딘가에 고여버린 물웅덩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흐르기만 하는, 그래서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듯, 또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그렇게, 또 그렇게. ​ 이번 가을은 유난히 향이 좋다. 앙상한 것들의 향이 스며들듯 나의 곁에 머물러주는 기분이다. 집으로 오는 길, 간만에 마주한 새벽 공기는 차갑고 달았다.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끝을 .. 2020. 10. 22.
값진 하루여서, 무료할 수 없었다 간만에 비가 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 지긋지긋했던 비는, 얼마 동안 보지 않았다고 색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 걸 보니, 사람이란 게 생각보다 변화에 쉽게 적응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얇은 옷에 카디건을 걸쳐 입을 수 있는 날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기도 하고, 믿고 싶지도 않고. 작년까지만 해도 겨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올해는 차가워지고 있는 날씨를 따라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있노라면, 날씨와 내가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든다. 하루하루가 쌓여갈수록 주변에 쉽게 동화되는 느낌이 좋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이제는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좀 더 노력을 들여야 할 것 같아서일까.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한편으로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이전에는 노력 없이도 당.. 2020. 10. 14.
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모순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있는가.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는, 다양성의 상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양하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다른 종들에 비해 종 다양성에 있어 억압을 가장 적게 받는 존재. 인간은 다른 민족이나 인종과 함께하는 것을 억압하는, 타 종으로부터 받는 제약은 가장 적은 편이다. 물리적 거리의 제약성 또한 적은 편이기에 다양성에서는 타 종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끼리의 차별을 제외하면 말이다. 인간은 가장 다양한 종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원하는 인간상을 제시해두곤 한다. 이러한 인간의 행위는 어쩌면 꽤 모순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 이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2020. 10. 12.
트라우마로부터, 우리에게 ‘트라우마’의 그리스 어원은 ‘상처’를 뜻한다. 우리는 각자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트라우마가 사라지기 힘든 이유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트라우마를 꺼낼 수 있는, 어떠한 센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센서는 불시에 트라우마를 담아둔 문을 열어버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트라우마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센서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거나, 전혀 없는 곳으로 일상의 방향을 틀어야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쉽지 않은 과정이며, 인생 전반에 걸쳐 해결해내야 하는 미션과도 같다.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며, 트라우마와 관련된 사건을 의도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해자들.. 2020. 10. 7.
2020. 09. 월간 글노트 ​ 공기가 갑작스럽게 차가워졌다. 가을은 얼마나 머물렀다고, 또 어디를 그리도 급하게 가려는지. ​ 가을이 머물고 지나간 자리는 허전해서인지, 아니면 허무해서인지 다들 허한 마음을 감싸기 위해 긴팔을 꺼내 입는 것도 모자라 하나를 더 걸쳐 입는다. 떠나려는 가을의 끄트머리를 붙잡아보겠다며, 바깥으로 나와 남은 미련을 쥐어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이럴 수 있는 순간이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 ​ 순간순간,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하지만 그중에도 유난히 빛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너무나 찬란한 순간조차 시간에 흘려보내야 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간절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간절함만으로는 무언가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 아쉽든 아쉽지 않든, 어쩔.. 2020. 9. 28.
생각보다 쉬울 거란 생각을 어렵게 했다 ​ ​ 보이지 않는 건 가벼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어딘가에서 뜬금없이 나타났던 생각을 주워 들었지. 근데 그게 생각보다 무겁더라고. 이왕 들어보기로 한 생각을 손에 꽉 쥐고 들어 올렸는데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그걸로 낑낑댔는지. 남들은 툭툭 잘만 들어 올리던 생각들이, 나에게만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괜스레 울적해지는 하루다. 문득 내 인생에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 같아.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밀려오는 외로움, 그리고 묘한 두려움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더라고. 특히 새벽엔 더욱이. 아마도 이런 게 새벽 감성으로 불리는 건가 봐. 어떨 땐 이불 먼지 털어내듯 속마음을 모두 털어내고 싶은데, 어른이 된다는 게 모순적이게도 내 마음을 포기하는 과정이잖아. 어쩌면 어른이.. 2020.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