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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비포 선셋(Before Sunset)' 후기 ​ ​ ​ ​ 다시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하게 됐다. 아니, 우연이 아니었을 수도. ​ 꿈같던 비엔나가 아닌, 현실 속 파리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다시 끌리지만 쉽게 꺼내지 못한 말이 한가득이었을 테지.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특별함을 지키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아마도 특별했던 것들이 자칫해서 일상이 되어버린 각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었으리라. ​ 지난날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서로의 생각과 모습이 조금 달라졌지만, 아직은 그때의 모습이 아른거려 그때 그 감정을 느끼게 되고, 묻어뒀던 서로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는 시간은 설렘으로 가득 찼을까, 아니면 현실로부터 파생된 또 다른 걱정이 앞섰을까. ​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비행기 시간 전까지. 시간이 주는 제약은 .. 2020. 7. 2.
시선의 왜곡과 굴절 최근 인스타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스칼렛 요한슨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어지는 역할은 정해져 있었어요. 사람들이 제게서 보는 것과 제가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요. @seoulparisdiary 님이 요약해두신 인터뷰 내용 스칼렛 요한슨이 자신의 섹시한 이미지를 즐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꽤 많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원하는 모습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분명 고통스럽기도 했을 텐데. 이미지, 첫인상으로 쉽게 결정지어지는 미디어.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다른 방향으로 보이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은 어떠했을까. 억울했을까, 다른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을까.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며 살아왔을까. 스스로를 미디어의 심판자로 여기고 생각하.. 2020. 6. 29.
영화 :: '더 랍스터(The Lobster)' 후기 ​ ​ ​ 하나로서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회인식에 대한 비난. 비현실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쩐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보는 내내 지울 수 없었던 묘한 불편함과 찝찝한 기분으로 둘러싸인 두 시간. 같은 장면을 보고도 ‘우리 모두 같은 생각으로 결론 지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 ​ “짝을 못 찾게 되면 어떤 동물이 되고 싶으시죠?” “랍스터요.” “왜 하필 랍스터죠?” “랍스터는 100년 넘게 살아요. 귀족들처럼 푸른 피를 지녔고 평생을 번식합니다. 제가 바다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어릴 때부터 수영과 수상스키를 했거든요.” “잘한 결정이에요. 대부분 개를 먼저 떠올리죠. 그래서 온 세상에 개가 바글바글 한 거예요.” ​ ​ 타인의 시선.. 2020. 6. 26.
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문구.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 무엇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힘을 주기 위해 사용되는 여러 문구 중 하나. 성경에서 나온 이 말이, 겉보기엔 축복의 말 같지만 사실 누군가를 향해 비아냥 거리는, 저주의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 ​ 욥의 친구 빌닷이 욥을 비아냥 거리며 했던 말이었다. 너에게 일어난 재앙과 고통은 아마 네가 그동안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 걸 거야. 뭐 만약에 네가 옳다면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겠지. 결국 욥은 무죄로 밝혀졌다고 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막상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면 또다시 원하는 대로 .. 2020. 6. 22.
영화 :: '업(Up)' 후기 ​ ​ 앨리와의 추억을 지켜내기 위해 출발했던 여행. 각자의 이익을 위해 접근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 익숙해졌던 할아버지. 타인의 도움 없이 해내려 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타인의 도움으로 이뤄내게 된다. 어릴 때 가졌던 환상이 한순간에 깨져나가고 그 위를 새로운 것으로 칠하는 과정은 항상 행복한 일은 아니다. 새로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에 가끔 놀랍기도 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는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아름답지 않다는 말이다. 과거를 지키기 위해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현재를 살아내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어릴 적 앨리와 함께했던 소년의 모습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고... 2020. 6. 19.
전부가 되어버린 가벼움 현재 출판되고 있는 에세이 류의 책은 글이 비교적 가볍다. 비판하려는 의도로 가볍다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니라, 잘 읽힌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가볍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에세이라는 분야가 위로와 공감의 코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잘 읽히는 글로 구성되어있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오랜 기간 사랑받는 책들은 대부분, 글의 무게가 있다. 그렇기에 그러한 책들을 처음 접했을 경우, 그 내용의 무게에 적응될 때까지 읽는 내내 지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책들은 그것들을 견뎌낼 만한 무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말로, 시대를 아우를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것. 하지만 가끔씩은 한쪽에 치우쳐있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때론 과할 정도로. 그저 유행이.. 2020. 6. 18.
영화 :: '매트릭스(The Matrix)' 후기 ​ ​ ​ ​ ‘영화와 철학‘이라는 교양수업으로 처음 만났던 ’ 매트릭스‘를 과제로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기억을 흐리게 한 것인지 아니면 내 맘대로 기억을 굽어버린 것인지. 또 다른 느낌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믿어 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거짓들로 뒤덮인 세상을 인식했을 때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겠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은 아니지만 의도치 않은 변수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낯설다. 스스로를 믿는 만큼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네오. 믿어왔던 것들이 무너졌지만 그것으로 또 다른 믿음을 만들어냈다. “진짜 현실 같은 꿈을 꿔 본 적 있나? 그런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면? 그것이 꿈인지.. 2020. 6. 16.
누가 자유를 쟁취했는가 ​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무제한적인 것인가. 단지 측량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제한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아마도 자유란 그런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유한한 것. 지구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자유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누군가가 이전보다 더 자유로워질 때 또 다른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시대에는 그 형태가 식민지배로 나타나곤 했다. 국토와 자원, 인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유까지도 약탈했던 것이다. 이 형태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지주와 노동자의 형태로 바뀌었고, 지금도 그 형태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물론 이전보다 다양해진 터라 그 형태를 이전보다 정의하기 어려워지긴 했지만 권력자와 비 권력자의 관계라는 것은 .. 2020. 6. 15.
영화 ::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후기 ​ ​ ​ ​ ​ 얼마 전에 영화 ‘Her’에서 마주한 목소리를 ‘결혼 이야기’에서도 만나게 되다니. 2020년이 시작할 때 즈음까지도 살면서 본 영화를 통틀어도 50편이 넘지 않을 정도로 영상으로 보이는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는데, 과제로 이런저런 영화를 많이 보게 되니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면 자연스럽게 과제 이외의 영화도 찾아보게 된다. 지난 주말에 사전투표를 마친 나는 오래간만에 얻게 된 휴일을 어떤 영화와 보낼까 고민하다 선택하게 됐던 ‘결혼 이야기’. ​ ​ ​ 서로의 꿈을 이루다가 만나게 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큰 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꿈뿐만 아니라 이뤄나가고 있던 꿈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 남은 가족같이 여기지만 가족인 자신에게는 철저하게 남과 같은 이기심을 뿜어대던 남편.. 2020. 6. 12.
부디, 지치지 말길 바라며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두 가지. 어떻게 30대를 맞이해야 할까, 지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이 좋아 좁은 길을 선택하였는가. 어찌 보면 남들이 가는 널찍한 길을 가는가. ​ 인생은 혼자다. 흔히들 말하는 ‘혼자 와서 혼자 가는 인생’이라 하지 않던가. 사람은 처음부터 외로운 존재였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부분을 부정하느라 일평생을 바치기도 한다. 외로움을 인정하자. 외로움 또한 나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자. 역설적이게도 스스로가 인간은 원래부터 외로운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걸 깨닫는 시점은 아마도, ‘조금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걸 ‘이 아닐까. ​ 하지만 상대적인 시간의.. 2020. 6. 11.
영화 :: '마더(Mather)' 후기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 ​ ​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싸기엔 너무나도 벅찼던 무게. 자식에게 자신의 일부를 물려준 부모. 부정했던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두 모자는 꽤 많이 닮아있었다. 아들은 자신의 결핍을, 엄마는 아들의 범죄사실을 정면으로 마주 할뻔한 순간이 올 때마다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격하게 몸부림쳤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기에, 이해를 바랄 수 없던 몸짓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첫 장면과 끝 장면이 돌고 돌아 같은 곳으로 이어진듯했지만, 일상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듯 보이는 그들은 결코,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겠지. 자식은 어떤 존재일까. 공들여 쌓아 온 자신을 무너뜨려가며 지킬 만큼 가치 있는 존재일까. 물론 대부분의 부모는 그렇.. 2020. 6. 10.
그런 인간 ​ ​ ‘요즘 책방:책을 읽어드립니다’의 ‘페스트’ 편을 본 것이 기억나 책을 구매하기로 했다. 교보문고 검색창에 ‘페스트’를 입력하고 검색을 누르니 각기 다른 표지를 뽐내며 같은 책들이 숫자가 달려 줄 세워져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띈 것은, 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가장 오래된 표지가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순간, 모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초판본 표지를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다 읽고 선물 줄 건데 뭐‘라는 생각을 하며 가장 저렴한 파스텔톤 디자인 옆의 ’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만원이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송비가 이천 원이 더 붙는 것이 아닌가. 고민을 했다. 파스텔 표지와 초판본 표지는 대략 오천 원 차이. 하지만 배송비가 붙으면 삼천 원 차이... 2020.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