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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행복에 집착하는 이유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왜 우리는 평생에 걸쳐 행복을 노래하는가. 행복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그러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에 대해 흥미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샀지만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짐으로써 더 이상의 흥미가 없어지는 것과 같이.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늘 새로운 장난감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행복을 찾아대는 것을 보면,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행복의 기준치를 넘겨본 적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이전에 설정해뒀던 행복의 기준치를 이미 넘어버려 새로운 행복의 기준치를 만들어냈거나. 행복이란 것이 마트에 진열되어있는 장난감과 같이 인생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요소라면.. 2020. 7. 27.
읽기 좋은 책 :: 프란츠카프카(Franz Kafka) '변신(Die Verwandlung)' 후기 ​​ ​ ​ 이상에 대한 붕괴. 아름답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던 느낌의 소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한 치 앞의 순간조차 알 수 없다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동안의 노력들이 무색 해질 정도로, 그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결과가 고작 벌레라니. 너무하다고 여겨지지만,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중에 훗날 벌레가 된 사람이 그레고르뿐인 걸까. 누구나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할 수 있다. 벌레로서 거절당할 수 있다. 거절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 ​ 그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 것일까. ​ 필요에 의한 가족, 조건부 가족. 가족이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 그리고 유지하기 위해 그는 얼마나 고군분투했는가... 2020. 7. 24.
익숙해진다는 건 우리가 어린 시절,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가 난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해서 그 다음번 다쳤을 때에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침으로써 느껴지는 아픔은 고통의 정도만 다를 뿐이지,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은 언제나 같다. 우리가 어린이로서 여러 해를 거치며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는 하나, 어른도 상처를 받는다. 상처라는 것이, 아무리 받아도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인간이란 게 참 게을러서 좋은 것은 금방 받아들이고, 적응해내며, 익숙해지지만, 아무리 잦은 고통을 겪는다 해도 무뎌지지 않는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고통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발악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세상을 살아가면서 익숙해지는 게 있을까 싶다. 무뎌지는 것일지, 아프지만 관성의 법칙에 의해 별 탈 없이 지나가는척하는 것일지. 살아.. 2020. 7. 23.
영화 ::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 후기 ​ ​ ​ 花樣年華[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지난날, 각자의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줄 알았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름다움인 줄 알았기에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침내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평생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른다. 그 자리에 그대로 영원할 줄로만 알았던 것들도 모두 흘러지나 간다. 세상에 영원하다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믿지 말아야 하는데 인간의 어리석음이 매번 무언가에 의지하게 하는 것인가. ​ ​ ​ ​ ​ ​ 어리석음으로 시작된, 겨우 붙잡고 있었던 빛조차 희미해질 때 즈음, 눈앞에 또 다른 빛이 그들을.. 2020. 7. 22.
2020. 06. 월간 글노트 ​ 이전까지의 시간과 다르게 밋밋했던 한 달이었다. 물론 언제나 스펙터클할 순 없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한듯했던 나날들이었다. ​ 뜻밖의 일로 글 쓰는 수업을 한주 쉬게 됐다. 평일엔 일을 하고, 영어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과제는 주로 주말에 멱살 잡아 끌고 가듯 해냈는데, 과제들이 없어지니 주말이 텅 빈 기분, 말 그대로 공허했다. 아무리 책상 앞에 앉아 딴짓을 해도, 핸드폰을 수없이 들여다봐도 시간이 남았던 이상한 주말이었다. ​ 다른 영화를 찾아볼까, 아니면 책을 읽을까, 그도 아니면 글을 써볼까 생각을 하다가 그냥 쉬어보기로 했다. 쉬는 게 익숙지 않아 낯설기만 한 휴식의 순간이, 맞지 않은 옷을 입고 하루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불편했다. ​ 주말에는 어쩔 수 없이 집에.. 2020. 7. 21.
영화 ::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후기 ​ ​ ​ ​ 누굴 위한 절차인가. 이것은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사람을 천천히 죽여가고 있다. 절차는 결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강자가 약자를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절차라는 것인데 이것이 약자를 보호하는 구역까지 적용해버렸다는 것은, 사회는 결코 약자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적 강자의 입장으로 만들어낸 절차를 약자가 넘어서기엔 너무나 가혹하다. ​ 몇 번의 절차를 거치며 자존심마저 사치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세상은 자존심조차 지키지 못하냐며 질책한다. 성실하게 사회에 임했던 그들에게 사회는 무엇을 주었나. 구걸하듯 자신을 증명해내야만 했던 그들은 사회로부터 무엇을 내주었는가. ​ ​ 어쩌면 그들의 운.. 2020. 7. 20.
모국어란 그런 것 글을 쓰는 사람이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딨겠느냐만서도 또다시 이런 식으로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인에게 어른스럽게 비치는 것을 즐기면서도 결국엔 또다시 어른이 되지 못한 모습이 비집고 나와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어버리곤 한다. 모국어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한정된 외국어 실력은 가끔 성대를 도려내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음과 모음 하나의 차이로 그 문장이 뿜어내는 분위기가 달라지는 한국어와 달리, 외국어라는 존재는 자꾸만 나의 표현을 두루뭉술하게 바꿔버린다. 물론 외국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외국어를 습득해가는 과정에서 오는 모국어와의 괴리감이 나를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지게끔 .. 2020. 7. 17.
영화 ::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 후기 ​ ​ ​ - 의외의 동반자 너무나 일찍 알아버린 세상, 그리고 그 세상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존재. 그저 세상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지켜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최선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지켜내려 하면 지켜내려 할수록 손에서 멀어져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였을까.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자신만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내가 간절히 원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주는 우리가 무얼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발 벗고 나서 도와줄 만큼 여유롭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그 과정을 열심히 수행해낸다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어떤 것이든 때가 있는 법이다. 충분한 경험과 결과를 위한 최소한의 능력이 .. 2020. 7. 16.
예술이 뭐길래 ​ 예술이란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예술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 아직도 예술의 추상성이 익숙지 않아 매번 한두 마디의 문장으로 정의를 하려 하는 나의 모습으로부터 오는 질문이다. 고민하지 어떤 게 예술가의 삶. 누구 위에 있기 위해선 존재하지 않아. 고민하지 아무도 죽이지 않는 노랫말. 그 앞에선 어떤 게임도 시작 버튼 눌리지 않아. SLEEQ - Here I go 최근에 내 안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노래 가사 중 일부. 예술이란 이름의 허용은 시적 허용처럼 단순한 것, 혹은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 예술적이라는 허용의 범위는 다른 요소에 대한 허용범위보다 더 넓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점을 이용해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예술이란 이름을 남용하는 사.. 2020. 7. 15.
영화 :: '올드보이(Oldboy)' 후기 ​ ​​웃어라, 모든 사람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매일을 대충 수습만 해가며 살아가던 그는, 안간힘을 다하여 조그마한 TV 화면에 집중했다. 그 티브이가 어느 날 말하길, 내가, 오대수가, 아내를 죽였다. 죽였단다. 자신의 부인이 살해된 소식을, 타인을 통해 듣는 기분은 어땠을까. 틀린 질문을 하니 맞는 대답이 나올 리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그의 아내는 왜 살해당해야만 했을까.​그렇게 흘러간 15년, 모든 것이 변했다. 누가 그를 가둔 것인가. 왜 하필 15년이어야만 했나. 아니, 질문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가 15년간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그렇게 15년을 위해 준비된 감옥, 그리고 15년간 준비되었던 .. 2020. 7. 14.
포스트 코로나 시대 포스트 코로나 세대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태까지 외향적이며 활달한 사람들을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판단하곤 했다. 그들은 다양한 대면활동에 참여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사람들 앞으로 나와 그들의 목소리를 냈다. 상대적으로 크게 들리던 그들의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듯했으며, 세상은 그들을 칭찬했다. 반면 대면활동을 그리 즐겁게 여기지 않았던 무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들의 일을 해나갔으나 외향적 인간들에 비해 크지 않았던 그들의 목소리는 쉽게 묻혔으며 세상은 그들에게 더 외향적일 것을 강요하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감염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비대면, 비접촉’이 트렌드로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내향적인 사람들, 즉 사회에서 질타받았던.. 2020. 7. 13.
영화 ::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 후기 ​ ​ 같은 공간 다른 색깔.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누가 희생되었는가. ​ 눈으로 볼 수 없는 이념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길래 이토록 사람들을 잔인 해지게끔 만들어버리는가. 풍문으로만 들어왔던, 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증오에 감염되었 던 탓일까. 증오의 이유를 거꾸로 타고 들어가다 보면 모순적이게도 그 의미가 희미해지는 듯하다. 서로에게 겨누기 위해,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그들은 선택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 니, 그들에게 선택권이 있긴 한 걸까. ​ ​ 서로가 서로를 이미, 타깃이 아닌 인간으로 인식했기에 폭력의 옷을 입은 배려는 서로의 언 어가 되었다. 인간적인 것이 허락되지 않는 공간에 인간적이었던 그들을 누가 질책할 수 있 을까. 매일 밤 바닥보다 더 깊은 바닥에서, 서로의 인간.. 2020.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