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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106

객관이라는 신기루 우리는 수많은 매체들에 둘러싸여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들이 꺼내오는 수십 가지 소음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결국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와닿을 정도로 넘쳐나는 매체 속에서 보다 객관적인 내용을 찾아내기 위해 삶의 대부분을 할애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들이는 수많은 노력으로 객관성을 얻어낼 수 있을까. ​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감정이란 게 존재한다. 사회에서는 감정적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요소로 분류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그 개체가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요소 중 그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쓸모없는 요소는 없으며, 감정이란 것 또한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필요한 요소이기에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 그렇기에 인간은 감정.. 2022. 1. 19.
아직 오지 않은 날이라 설렐 수 있었다 한 해가 시작된 지 벌써 며칠씩이나 지났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움찔거려보지만 그렇다 해서 이 흐름을 멈출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얼마 후면 지금 머무는 이곳조차도 과거시제로 설명되겠지. ​ 떠나야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분명 발을 디뎌 또 다른 곳을 나를 던져야 낯섦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두려움에 스스로의 발목을 옥죄고 있더랬다. 어느 곳에도 채 닿지 못한 그 찰나의 순간이 두렵다고 해서 이대로 가라앉고만 있을 순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 ​ 앞으로의 시간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와 줄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 경험들이 모여 후에 어느 시점에.. 2022. 1. 14.
참고하기도 참고 하기도 싫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에 비해 몸 끄트머리의 모든 것들이 아려오는 날이다. 바닥에 닿은 빛을 따라 거슬러올라 창문을 열었다. 바깥공기도 추위에 꽤나 지쳐있는지 창틀을 굳게 잡고 선 꾸역꾸역 고개를 들이밀고 들어왔다. ​ 알싸한 공기 속 느슨해진 긴장의 틈으로 새어들어와버린 불청객이 뜻밖의 불안을 만들어냈다. 초대한 적 없는 손님은 그렇게 우리를 휘저어대고 나서야 사라졌고, 냉랭한 침묵이 감도는 이곳은 어쩌면 바깥보다 추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참고하기도 참고 하기도 싫었다. 당연시 여겨졌던 것들이 언제부터 당연한 것이었는가. 게으름이 익숙함이라는 핑계를 대고선 당당하게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오만한 고갯짓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스스로를 견뎌내야 할 자괴감에, 무뎌져버린 듯 따라 움직.. 2021. 12. 8.
목표가 타인을 향할 때 모든 사람들은 실패를 경험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같은 실패를 하게 될지라도 그것에서 얻어 가는 것은 각기 다르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유사한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 전문가들이 최악의 상황을 말했음에도 빠른 시간 안에 과거만큼, 혹은 과거보다 더 큰 성과를 이룩해낸 집단이 있는 반면, 분명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함에도 그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최악을 향해 가는 집단도 있다. 분명 인간이 당장 극복하기엔 크나큰 실패라는 유사성을 지님에도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되었다. 우리는 이들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가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도전에 실패를 경험하는 것은 당.. 2021. 12. 6.
일상은 균형을 맞추어가는 과정이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 머물렀던 따스한 공기는 어디로 간 걸까. 하긴 생각보다 꽤 오래 머물고 갔으니 아쉬움이란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시점마다 무언가에 급히 마무리 짓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무리 짓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나의 일상은 안녕할까. 안녕하기엔 여전히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겪어내야 할 실패도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앞으로 나에게 찾아올 일들에 대한 설렘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나를 이뤄내는 대부분의 일이 나를 키워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그럼에도 여전히 과도기를 살아가고 있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과도기를 지나오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 2021. 11. 29.
익숙함은 속이려 한 적이 없었다 벌써 올해의 마지막 계절을 지나고 있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날짜 기입란에 2021 끝의 1이라는 숫자가 그렇게나 낯설게 느껴졌는데 이제 익숙해지려 할 때쯤 되니 또다시 낯선 숫자를 마주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마도 일 년이란 시간은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나 보다. ​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걸 잃지 말자는 누군가의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권태기라는 말로 익숙함을 능숙하게 표현하면서도 익숙함이라는 것을 처음 마주하는 사람처럼 멍하니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 모순적이게 느껴질 뿐이다. 어쩌면 알면서도 속아주는 건지, 아니면 속았다는 말로 스스로의 변덕을 둘러대고 싶은 건지. ​ 익숙함은 속이려 한 적이 없었다. 단지 그 끄트머리.. 2021. 11. 22.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 벌써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끊임없는 주말 약속과 오랜만에 연락 오는 사람들에 지쳐 갈 무렵, 몇 달 전에 예약해두었던 콘서트의 디데이가 벌써 오늘이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 콘서트장까지의 거리는 최소 한 시간 반 그리고 두 번의 환승, 다시 말해 왕복 세 시간 그리고 네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티켓을 취소할까 하는 생각으로 콘서트 예약 앱을 열었으나 당일 취소는 불가능한지 예매 취소 버튼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 집에서 좀 더 쉬고 싶은 마음에 짓눌려 티켓값을 기억 속에 묻어둘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몸을 일으켜 어느새 하늘색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었다. 여전히 경기도는 너무나 넓었고, 가야 할 길은 멀었다. 그렇게 꽤 많은 역을 지나쳤고, 공연시간보다 몇 분.. 2021. 11. 15.
세대 분류의 폭력성 트렌드에 대한 주제가 던져질 때마다 'MZ 세대'라는 키워드 또한 함께 떠오르고 있다. 여기서 표현되는 'MZ 세대'란 80년대 초반 출생부터 00년대 초반 출생까지를 아우르고 있는데, 현재 이들의 범위는 한국 나이 기준 1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이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지만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하고 있어 이것도 벌써 옛말이 되어버렸다. 빠르면 3~5년 사이에도 꽤나 많은 변화들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세대 분류라는 명목하에 30년 정도의 긴 시간 동안 태어난 이들을 하나의 세대로 묶어 하나의 명칭으로 정의해버렸다. ​ 굳이 세대를 나눠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세대를 분류하는 행위는 기성세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기존 자신들.. 2021. 11. 9.
네 말의 온도차에 감기가 걸린 거야 오랜만에 홀로 맞이하는 휴일이다. 이게 얼마 만인가 싶은 생각에 양팔을 한껏 위로 끌어올렸다. 분명 채우는 시간보다 그 시간들을 정돈하고 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해왔더랬다. 무엇에 이리 치여살았는가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시기임을 알기에 내뱉었던 숨을 다시 들이켰다. ​ 여유 없는 삶을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 그 누구도 여유 없는 시간을 오래 즐길 순 없는 거였다. 그럼에도 이 순간들을 견뎌내려 하는 이유는, 이 시간 후에 찾아올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일까. ​ 때때로 아득해지곤 한다. 내가 기대했던 무언가에 대한 희망 하나만으로 기약 없는 기다림을 버텨낼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오늘도 기계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버렸다. 습관적으로 아이패드를 켜는 나.. 2021. 11. 8.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우리는 무얼 위해 이렇게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나. 고작 100년도 되지 않을 시간을 누리기 위해 나의 전부를 갈아 넣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친다. ​ 야속하게도 우리가 어떤 시기를 겪어내고 있든 시간은 흘러간다. 이렇게나 무정한 시간 끄트머리를 붙잡고선 정신없이 흘러가다 보면 그 끝이 있을까. 밀려드는 막연함에 잠겨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절실할 시간일 테니. 그들의 절실함을 따라 꾸역꾸역 붙잡고 있던 손이 끊임없이 저려온다. ​ 결국 우리는 잘해봐야 시체가 될 뿐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아무리 발악을 한다 한들 결국 우리는 시체가 될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숫자로 매겨지는 가치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 2021. 11. 3.
나만의 시간은 나만의 공간에서 흘렀다 아침저녁으로 차디찬 공기가 옷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코끝이 시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문득 겨울이 왔다는 걸 깨달을 정도의 차가움이다. 낮은 건물들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에, 진짜 겨울이 왔구나. ​ 집으로 가는 건너편 신호등의 빨간 불빛을 보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물들어오는 모닥불 향이 스치면서 알싸한 공기가 잊고 지냈던 크리스마스를 추억하게끔 한다. 아직 캐럴도 들려오진 않지만 매 겨울 맞이했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마음 한편 고이 담겨 있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크리스마스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 어둠을 덮고 있던 방에 들어와 앉았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은 방안으로 흘러들어 발앞까지 들어왔다. 스위치 하나에 이 모든 어둠을 거둬낼 수 있었지.. 2021. 10. 28.
나이가 들면 이 불안이 사라질까 우리는 모두 불안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불안하지 않은 삶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변수들은 끊임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변수란 것이 대부분 크게 몇 가지로 특정 지어져있긴 하지만, 그 요소에서 해방된다 하더라도 이내 또 다른 불안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 그러므로 불안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건 꽤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동이 될진 모르겠지만, 불안을 없앨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은 오히려 당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 ​ 여기서 좀 더 나이가 들면 불안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가 먹을수록 늘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021.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