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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106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밖으로 나가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치고 있다. 모든 가을이 그러했듯, 충분히 음미하기도 전에 차디찬 공기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선다. 올해의 가을도 마스크에 가려진 채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 해내야 하는 일들을 한가득 껴안고선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하나를 끝낸다 해도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숨어있던 또 다른 일이 또다시 달려 안겨온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 과정을 견뎌내기란 그리 순탄한 게 아니기에, 그렇게 껴안은 일들이 한가득 쌓여 시야를 가려버린 듯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펼쳐질 무언가를 기대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바쁜 상태에서 오는 무료함이 다가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바쁘긴 하지만 바쁘기만 한 것은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일상에서 새로운.. 2021. 10. 21.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다 갑작스레 겨울이 찾아왔다. 며칠 전까지 느껴졌던 잔잔함은 온데간데없고 겨울 향리 그 자리를 매워버렸다. 시큼한 공기가 코끝으로 느껴지자 붉게 물들어갔다. 갑작스레 두터워진 채도 낮은 옷차림에 겨울이 왔음을 실감하고 있다. ​ 추위에 움츠러들어 둔해진 공기와 부딪히며 길을 걷고 있노라면 희미하게 느껴지는 햇살이 아득하게 느껴지곤 한다. 너무나 가까워 타버릴 것만 같던 그 시간이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데, 우리가 서로 꽤나 가까웠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이제는 너무나 멀어진 이 빛이 문득 그리워졌다. ​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다. 서로의 거리가 적당치 못했던, 그때가 좋았다. 가끔 우리의 거리가 부담이 되어 때로는 마주 보고 있었던 눈을 감아버리곤 했던 그때가 좋았다. 가까웠기에 밝았던 나의 세상이 .. 2021. 10. 18.
기다리다 지치는 건 약속이 아니었다 어느 가을날, 벤치에 앉아 차가워진 바람을 스치며 차분해지고 있었다.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몰라 일단 보이는 벤치에 덥석 앉았고, 언제나 이어폰으로 채워져있던 귀를 통해 바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순간 바람을 거쳐갔음에도 이 소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늘 바라왔던 순간이 이렇게나 쉽게 이루어지니 때아닌 허망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렇게나 갈망했던 것이 이렇게나 쉽게 얻어질 일인가.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라며 옥죄었던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여유에 대한 환상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것이 아닐까 싶기도. ​ 기다리다 지치는 건 약속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버스정류장에 붙어있을법한 막연한 문장만 믿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했더랬다. .. 2021. 10. 14.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이었다 칙칙한 하늘이 감흥 없이 느껴지던 어느 날. 발끝으로 느껴지던 겨울은 신발 안까지 파고들었다. 얼어붙을세라 발가락을 꿈틀거리며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로 떨어져 파랗게 질려버린 신호등 속 사람은 어딜 가려 저리 급하게 몸을 틀었는지. ​ 여전히 겨울이다. 이유 모를 추위가 우리 삶 속에 파고들어오는, 바로 그 겨울이다. 매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겨울은 왜 이리 부지런한지. 한 번쯤은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가끔은 겨울이 미워지곤한다. 좋은 경험만 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서도 나는 여전히 삶이 낯설게만 느껴져 이 추위가 언제쯤 끝이 날 지 어디까지 움츠려들어야 할지 아득하게 다가온다. ​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이었다. 따뜻함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따뜻한 사람.. 2021. 10. 12.
감정이란 쓸모없는 것일까 인간에게 감정이란 요소는 인간에게 다양한 것을 제공하는 반면, 하지만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감정이란 무언가의 효율을 올리는 데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 감정은 우리가 어떠한 일을 진행하는 데에 일관성 있게 임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지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감정이라는 요소가 꽤 큰 비중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효율만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면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의 관습에 대해 비판 없이 수용하지 않을까 싶다. ​ 어쩌면 효율을 따지기에 앞서,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 등의 감정이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이끌어낼.. 2021. 10. 6.
쉬는 것이 죄가 되는 사회 우리는 잘 쉬고 있을까.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온 우리는 쉬는 것 또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요받아왔다. 쉬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열심히라는 말과 쉰다는 말의 조합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쉬는 것조차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우리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 최근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다. 이는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인간이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겠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러한 고통 속에 잠식당하고 있다. ​ 여유가 없다. 나와 내가 대화를 나눌만한.. 2021. 9. 29.
한참 기다린 가을이 오긴 했다 집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에, 아 가을이 왔구나. 여름의 흔적처럼 여전히 드러나있는 살결에 바람이 스치자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렇게나 지루했던 여름이, 정말 지나가는구나. 옷장에서 짙은 오렌지색 카디건을 집어 들었다. 아직까지 낮에는 조금 더운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을인걸. ​ 가을의 카디건을 사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카디건을 입을 수 있는 이 계절을 사랑한다. 선선함과 살짝 더운 그 공기 사이를 오가는, 그 느낌을 사랑한다. 그동안 텁텁했던 그 공기들을 환기시키는듯한, 그 계절을 사랑한다. ​ 얼마 후면 또 가을이 그리워질 테지. 차가운 공기가 옷 틈새로 들어올세라, 옷깃을 여미기 바쁠 테지. 계절의 내음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는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라지겠지. .. 2021. 9. 23.
유토피아는 없다 인간이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의 환상은 대부분 허상에서 끝날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유토피아처럼 묘사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살기 좋은 곳일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북유럽 사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폐쇄적이다. 그들은 외부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북유럽 국가에서 혼혈인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에서 이들의 폐쇄성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규정되고 있는 북유럽이의 외모를 지닌 백인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여러 인종이 함께 살아가고 있어 일부를 제외하고는 인종차별에 대해 조심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북유럽에선 누군가가 어떠한 발언 혹은 행위에 대.. 2021. 9. 15.
되돌아가도 바꿀 수 없는 결과가 있었다 부지런히 변하는 계절을 따라 공기의 향이 변하고 있다. 시간을 주로 그때의 향과 노래로 기억하는 편이라, 매 순간 돌아오는 계절의 향은 나의 기억을 머릿속에 스치기엔 충분했다. ​ 가끔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추억에 젖어, 그땐 그랬지라는 이야기와 함께 지금 우리의 모습을 잠시 돌아보곤 한다. 우린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우린 과연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까. 그리고 만약 그 답이 그렇다 라면, 우리는 무얼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 함께 보내야만 하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추억 때문일까. 그때와 달리, 이제 노력하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는 우리의 상황이 슬프게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세상에 치여 그 시간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걸까. 그때의 순수함이라고 하기엔, 다시 지금.. 2021. 9. 9.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됐다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있다. 왠일인지 눈이 일찍 떠져 시간부터 확인했다. 새벽 5시, 당장 일어나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더 잠들기엔 애매한 시간이다. 머리맡에서 풍겨져오는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말에 머리를 했던 흔적이 여전히 냄새로 남아있었다. ​ 조금 더 평범해지기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머리를 감고나와도 냄새는 여전히 어깨주변을 맴돌고있었다. 여느때처럼 빠르게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여전히 어둠이 묻어있는 공기를 맞으며 지하철로 향했다. ​ 가끔 이렇게 변화없는 나의 삶이 두려워질때가 있다. 누군가는 덥석덥석 잘해내는것조차 꾸역꾸역 해나가는걸보면, 삶에 재능이없나 싶기도하고. 하고싶은걸 하겠다며 꾸준히 무언갈 해나가는 주변을 보면, 이도저도 아닌 나의 재능이 되려 나.. 2021. 9. 7.
암묵적 방관의 사회적 약속, 가부장제 ​ 소설에 아로새겨진 역사 속 여성들의 삶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어머니 없는 아이들'이라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통렬한 전언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가부장제의 역사 속에서 거듭 여성들이 감당해야 하는 '폭력'의 일상이다. 이 폭력은 아이들을 집어던지는 부모의 충격적인 모습으로 소설에 재현된다. '날아서 눈더미에 박힌 적이 있'는 이순일의 유년기 기억은 세대를 넘어 다른 가정에서 성장한 하미영의 기억 속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재현된다. - 창작과 비평 192호 특집, 백지연 '삶의 전환을 꿈꾸는 돌봄의 상상력' ​ 같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성의 삶, 남성의 삶과 같은 이분법적인 분류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도 있다. 분명 각자가 지닌 고통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서로 .. 2021. 8. 12.
그 많던 가해자는 어디로 갔나 꽤 오래전부터 뉴스에서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단어는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더욱더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사회의 발전 속도가 줄어들면서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삶에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용납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동반자살'이란 이름의 살인사건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 이미 죽어버린 피해자가 죽음을 원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혈연관계로부터 죽음을 강요받았는지,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자발적으로 자살을 시도 한 것인지, 가족에게 살해를 당한 후 가해자 스스로 자살한 것인지 명확한 피.. 2021.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