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441

유럽 1-1. 프랑스 파리 France Paris🇫🇷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하겠습니다." 두근거리기보단, 오랜시간동안 한껏 구겨져있던 몸을 드디어 맘껏 펼쳐 놓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행여 서있는 방법을 잊었을까, 연습 삼아 양팔을 쭉 펼쳐 찌뿌둥한 몸을 한껏 늘려보았다. 기지개를 켜는 동안 시선을 돌려 마주한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기껏해야 한두 시간의 시차 정도만 경험해본 나로선, 시간이 많이 흐르진 않는 느낌이었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 놓여있을 때 즈음 출발해 꽤 오랜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만 있었으니, 낮과 밤 정도로만 구분할 수 있는 이곳에서 시차라는 것은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만 있을법한 단어였다. 서울에서부터 파리까지, 8시간정도를 거슬러왔다. 2019년 나의 3월 6일은, 내가 여태 살아왔던 날 .. 2021. 3. 19.
영화 :: '미 비포 유(Me Before You)' 후기 ​ ​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는 인생이 있을까. 즐거움도, 또 어떤 좌절도 영원한 것은 없다. 누군가는 뜻밖의 죽음을 맞아해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삶의 레일에서 내려와야 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죽음이란 것을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 과거와 현재의 괴리가 남은 인생 동안 극복해내기엔 불가능하다 생각이 들었기에 매 순간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꾸준히 고통스러울 줄로만 알았던 앞날뿐이 남지 않은듯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은 예상치 못한 순간의 연속이며, 또다시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과 마주했다. ​ 세상에는 고통을 주는 사람과 그 고통을 거둬가는 사람이 있다. 사람에 상처받아 사람으로 치유받는다는 것이 꽤 모순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 2021. 3. 18.
영화 ::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Swallowtail butterfly, スワロウテイル)' 후기 ​ 사람들은 태어난 곳이 그들의 고향이라 부른다. 엔타운이라는 곳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국적을 숨겨 불법 이주자의 신분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니, 어찌 보면 엔타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이 나고 자란 고향 말고도 엔타운이라는 하나의 또 다른 고향이 생긴 셈이다. ​ 일본은 그들을 숨기고 싶어 했고, 최선을 다해 숨기려 했다. 모든 것은 좋은 면만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본은 그들을 외면함과 동시에 핍박했다. 여전히 엔타운을 자신의 치부로 여기며 여전히 드러나지 않길 바랐으므로, 그들은 그렇게 일본이 만들어둔 그늘에 묻혀버렸다. ​ 같은 인간이었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짓이겨져도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혹은 관심조차 없을 그들은, 한 마리의 .. 2021. 3. 17.
읽기 좋은 책 :: 'AI 시대, 본능의 미래' 2. 고기의 미래 ​깨끗한 고기 산업을 상대로 더 과격한 비건들이 반발하리라고 예상했다. 비록 시작 세포를 얻는 데 필요한 동물의 수는 훨씬 적지만, 어쨌거나 깨끗한 고기도 사람들에게 식습관을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동물을 희생시키며 살라고 활발히 권장하는 게 아닌가. ​깨끗한 고기를 인정한다는 건 동물 실험과 소태아혈청을 이용해 개발한 기술을 눈감아준다는 뜻이며, 그 고기를 사는 건 타이슨이나카길처럼 깨끗한 고기 스타트업에 큰돈을 투자하고 세계적으로 동물을 수십억 마리나 도살하는 대형 육류 회사의 배를 불려주는 행동이다. 적어도 온라인 캠페인, 혹은 베이에어리어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위, 아니면 몇몇 기업가가 실험실에서 퇴근하는 길에 가짜 소태아혈청이라도 뒤집어쓰는 사건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인간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 2021. 3. 16.
영화 :: '트루먼쇼(The Truman Show)' 후기 ​ ​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획되어진 삶을 살아왔다. 자신에 의해서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주체적인 삶이라고 여기며 쌓아왔던 그동안의 시간들이 한순간에 부정당해야만 하는 그의 기분은 어떨까. ​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하나의 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의로든 타의로든 조그마한 섬 하나 벗어나지 못하던 트루먼처럼 우리의 주변에서는 우리의 도전을 꾸준히 좌절시킨다는 의미로 말이다. 분명 응원까지 바란 것은 아닌데 그저 들어주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매 순간 우리의 자아는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게 된다. ​ 어쩌면 그들 또한 그러한 말을 듣고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이 듣고 살아왔던 말을 타인에게 그대로 흘려보내려 하는 것.. 2021. 3. 15.
영화 :: '하나와 앨리스(花とアリス, Hana & Alice)' 후기 ​ ​ 어린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게 당신과 앞으로 함께할 수 있을 거란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았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아이의 거짓말은 얼마나 허술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그 구멍을 파고들었던 너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아니, 사실은 부끄러운 감정을 화로 숨기고 싶었는지도. ​ 앨리스를 찾아가 부탁을 했다. 나의 연극에 그가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주길 바라는 몸부림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우리의 연극에 그저 그가 함께 발맞춰주는 것인지 그땐 알지 못했다. 기억을 찾는 것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엘리스는 .. 2021. 3. 12.
읽기 좋은 책 :: 'AI시대, 본능의 미래' 1. 섹스의 미래 ​ ​ 동아시아에 관한 아주 강력한 클리셰 두 가지는 첫째, 기술이 윤리적인 경계에 구속당하지 않고 발전하는 곳. 둘께, 섹스에 관해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태도를 보이는 곳이라는 것이다. 중국인과 한국인, 일본인은 섹스에 집착이 심하면서도 동시에 무심하다고 한다. 앞뒤도 맞지 않고 불공정한 고정관념이다. 이 지역에서 만드는 기묘한 섹스 장난감을 상당 부분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산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특히 더 그렇다. - 제니 클리먼 'AI시대, 본능의 미래' ​ 동아시아의 문화는 오래전부터 개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길 요구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우리의 문화는 인간의 성(性)에 대한 모든 언행과 행동을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하였으며, 그 결과 우리는 자연스러운 질문들을 숨기기에 바빴다.. 2021. 3. 11.
영화 :: '4월 이야기(四月物語, April Story)' 후기 ​ ​ ​ ​ 선배는 나의 꿈이었다. 나는 그 꿈을 따라 도쿄로 왔다. 무작정 이곳에 오면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또 그렇게 쉽게 흘러가진 않았다.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었던 책방에선 내가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아, 책이 아니려나. ​ 여느 때와 같이 버릇처럼 들렀던 책방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쳤다. 그토록 그리던 순간이었는데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한순간이었다. 역시 꿈은 꿈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는 건가 보다. 허무함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잘 있구나, 그렇구나라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 도쿄에 무작정 올라올 수 있었던 목표는 단지 하나였기에, 이곳에서의 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외롭고 또 외로웠다. 도쿄에서의 삶을 버티게 해줄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용기 내어 건넨 .. 2021. 3. 9.
영화 :: '봄날은 간다' 후기 ​ ​ ​ ​ 인생에 한 번뿐일 것 같은 사람이었다. 흔들리던 갈대 소리에 이끌린 건가, 아니면 감정 소리에 이끌린 건가. 어느새 이곳, 강릉까지 오게 되었을까.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걸까 싶다가도 너무나 당연해진 내 자신이, 기다리기만 한 내 자신이 안쓰러워져 그 사람을 향해 꿈틀대보기도 했다. 그저 함께하고 싶어 한 노력이, 너에게 나를 당연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네 앞에서 나는 그저, 동네 슈퍼마켓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라면 같은 정도의 사람이었나 보다. ​ 김치는 내가 만들면 된다는 말이, 그 사람에겐 한낱 어리광으로 들렸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각자 지나왔던 경험은 너무나도 달랐고, 그 차이를 매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리석게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 2021. 3. 8.
보여져야만 하는 선택 남들에게 보여져야 하는 것, 그리고 보여지기 위해 고군부투하던 그날의 흔적들. 그날 찍어둔 영상을 무심히 보고 있노라면 한때 내 친구의 열정도 이렇게 지나쳤겠구나 싶었다. 누구는 우연한 기회로, 또 다른 누구는 몇 년 혹은 그보다 더한 기간을 들여 마침내 드러나게 된다. 아름답지 않은 사실이겠지만 인생은 운의 연속이다. 우리는 단지 이 흐름에 따라 흘러갈 뿐이다. ​ 억울하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누군가는 이리 쉽게 얻어내는 것 같으니 말이다. 다만 잠시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저들이 원하는 어떤 것을 내가 쉽게 얻어낸 것처럼 보였던 순간이 분명 있겠지. 다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들이 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묻어두기로 하자. 어쩌면 그다지 아름다운 진실이 아닐 수 있으니. 사실 그 이유는 우리.. 2021. 3. 5.
가능성이 있는 상태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능성 있는 사회라 말한다. 가능성이라는 것은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편이며 사람들은 이러한 흐름에 따라 가능성이라는 것을 추구하곤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해주거나, 혹은 내가 나 자신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의 또 다른 잠재력을 찾았다는 생각에 기뻐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대체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며, 가능성이 있는 상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 어느 정도는 맞고, 또 어느 정도는 그렇지 않다.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던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경우가 많지만, 가능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도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2021. 3. 3.
영화 ::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후기 ​ ​ ​ 이곳에선 과거에 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부와 명예를 가졌는지 중요치않았다. 오직 피부색 하나로 계급이 나뉘었으며, 그들의 눈에 나는 그저 한낱 흑인일뿐이었다. 솔로몬 노섭이라는 이름으로 몇십년을 살아왔건만, 이곳에서 살아남기위해서는 내자신을 플랫이라는 이름속에 덮어두어야한다고한다. ​ 살아남는것이 이렇게나 지독한것인줄 이전까진 알지못했다. 나의 삶은 행복한 가족과 음악가로서의 삶, 사람들의 호의로 둘러싸여있었다. 당연스레 나는 세상에 호의적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줄알고있었다. ​ 나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고있던 사업을 나에게 설명하며 내 가치를 인정해주듯 나를 대접해줬다. 세상에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던 나는, 그들의 호의.. 2021.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