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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4. 월간 글노트 이쯤 되면 날이 좀 풀릴 줄 알았는데, 공기는 여전히 차갑다. 나는 여전히 니트 한 무더기를 옷장 깊숙한 곳에 집어넣지 못했다. 5월이 끝나기 전엔 얇은 옷을 꺼낼 수 있으려나. ​ 늘, 예상했던 것은 날 비웃기라도 하듯 교묘히 빗겨나간다. 이젠 이런 것에 무뎌져 예상조차 하지 않으려 하지만, 또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선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진 않나 보구나 싶다. 가끔 이런 생각들이 옷 끄트머리를 잡고 놔주지 않는데, 언제 이렇게 겹겹이 쌓여 눌러앉아버린 걸까. 아마도 실컷 게으르고 싶은 마음을 대변해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 새로운 시도를 했다. 생각해 보면 한두 달 주기로 새로운 걸 시작했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진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이렇게나 꾸준히 새로운 걸 매번 시도.. 2021. 5. 4.
미움을 산 적 없어, 아무도 팔지 않았거든 평생을 사람과 맞대어 살아가야 하는 삶이지만, 그게 참 녹록지 않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의 연속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람 마음을 어떻게 다 따라갈 수 있을까. 사실 사람들의 방향이 각기 달라, 이리저리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데도 말이다. ​ 어릴 때는 그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줬으면 했다. 아마도 그때는 누군가가 나를 미워할 수도 있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듯했다. 누군가의 미움을 사는 게 싫었다. 딱히 이렇다 할 이유랄 건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주변 사람들도 다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그저 스스로를 미움이라는 굴레에 가둬버린 게 아니었을까. 그 속에 나를 방치해 뒀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 그 시기엔 사람과 사.. 2021. 5. 3.
유럽 1-6. 프랑스 파리 France Paris🇫🇷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파리를 거닐며 여유를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었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노트르담 대성당이었고, 성당 앞 광장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파리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성당 앞에 사람들이 유난히 몰려있는 듯했다. 사람들 틈새로 보이는 우리의 일행도 발을 옹기종기 모아놓고 선 바쁘게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이 위에 발을 한번 올리면 파리에 다시 올 수 있다는 귀여운 미신이 있다는데, 미신일 뿐이지만 다시금 파리에 오고 싶은 마음이 사람들을 여기로 이끈 게 아닐까 싶었다. ​ "우리도 하자." ​ 함께 있던 언니들 중 한 명이 말을 꺼냈다. 곧 우리도 금색과 동색 사이의 동그란 판위에 발을 올려두었다. 옹기종기 모여든 발을 찍은 사진을 기념으로 남겨두고, .. 2021. 4. 30.
5월의 신부에게 벌써 결혼이라니. 생각해 보니 앞자리가 바뀌는 두 번째 순간도 머지않았네. 청첩장 받을 때 함께 받았던 포토북을 집에 와서 찬찬히 넘겨보니 잔잔하게도 우리, 오랜 시간을 꾸준히 겹쳐왔나봐. ​스무 살이 갓 지난 우리는 분명 어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들이 점점 현실적이라는 표현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 우리도 결국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싶어.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조금씩 떫은맛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제 정말 우리, 마냥 어릴 수만은 없는 거구나. 분명 나는 이상주의자가 아닌데도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라는 뜻이겠지.​다들 결혼이란 게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이라 하지만, 그보단 조금 더 어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게 아.. 2021. 4. 29.
영화 ::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후기 ​ ​ 드디어 현실에서 함께하게 된 두 사람. 잠깐의 아름다웠던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 함께 헤쳐나가야 할 현실에서의 문제를 버텨낼 수 있을까. 사람들은 사실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또 영화이기에, 현실과 다르지 않을까 조금의 기대를 가져봤는지도 모른다. 추억은 추억일 때 가장 아름답다는 말에 나 또한 동의하고 있었던 걸까. ​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진짜 엔딩일까. 해피엔딩 뒤에는 늘 행복한 일만 있을까 싶지만, 또 그게 그렇지 않기에, 그 지점에서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끊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다. 아니 사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해피엔딩이라는 것이 진정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이미 알고 있지만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가 .. 2021. 4. 27.
영화 :: '가스등(Gaslight)' 후기 ​ ​ 누군가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세뇌시키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단지 그러한 행위를 '세뇌'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그 의미가 협소했기에, 이러한 행위가 주목받고 한 단어로 정의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그 의미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 '가스등'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영화는, '가스라이팅'의 어원이 되는 영화이다. 꽤 오래전에 개봉했던 것으로 미뤄보아 가스라이팅이라는 행위는 그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에 나오지 않았던 어떠한 이야기가 처음 수면 위로 올라올 때 상징성과 일반적이라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당연시 여겼던 사회 분위기 속에 우리의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가스라이팅에 대하여 문.. 2021. 4. 26.
유럽 1-5. 프랑스 파리 France Paris🇫🇷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셔터에 담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이 여유, 그리고 이 분위기를 온몸으로 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옆으로 늘어져있던 카페와 식당들을 스쳐 지나가며, 잠시 이곳 앉아서 이 느낌을 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희 언니가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었다. "우리 카페 갈까?" "네 좋아요." ​ 적당히 북적거리는 오르막 거리에서 앉아있을 카페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한 카페가 눈에 띄었는데, 카페 밖에 놓여있는 테이블에서 앉아있을 수 있게끔 되어있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카페로 들어서니 여기까지 함께 왔던 일행 세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선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닫고서는, 셋이 사진 찍는 모습이 귀.. 2021. 4. 23.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내가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며 이것저것 끄적여보던 중, 문득 나는 무얼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밀려왔다. 수십 번, 수백 번 두드려보아도 여전히 그대로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아서 두려움이란 감정이 간혹 나를 덮어버리려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두려움이 문 두드려오는 소리를 외면하려하지만, 오늘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 그동안 나는 무얼 했나.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해나갈 때, 나는 멈춰있었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각자의 때가 있다는 이 말이, 오늘따라 왜 이리 유난히 아프게 다가오는 걸까. 가만히 앉아서 멍 때려보기도 하고, 끄적여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이유는 여전히 찾지 못했다. 어쩌면 애초에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은게 아닐까. ​ 그동안.. 2021. 4. 22.
기분은 누군가 정해주는 게 아니었다 눈꺼풀이 유난히 무거워 축축 처지는 금요일이다. 뜬금없이 차분해지는 몸과 마음을, 다가올 주말을 위해 흘려보내는 의식을 하는 마냥 따뜻한 물에 홍차를 띄워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보곤 한다. ​ 그런 날이 있다. 누구에게도 감정적으로 휩쓸리고 싶지 않은 그런 날. 그럴 때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잠이 깼음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나른한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이불 밖의 차가운 공기를 발끝으로 툭 건드려본다. 이불 안과 밖의 온도차에 적응이 될 즈음에 긴장이 풀렸는지 배가 고파오는데, 그럴 때 자리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창문으로 향한다. 창문을 열면 이불 속에서 느낀 것과는 조금 다른 온도차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게 꼭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때로는 이런 내가 어색하게 느껴지곤 한다. 활.. 2021. 4. 20.
영화 :: '아사코(寝ても覚めても, Asako I & II)' 후기 ​ ​ 첫사랑, 그리고 그를 닮은 사람.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류헤이와의 인연을 만들 수 있었지만, 여전히 아사코 속 한켠에는 바쿠가 머물러있었다. ​ 바쿠는 아사코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단순히 첫사랑을 그리워한다는 이유만으로는 류헤이와 함께했던 시간에 그가 홀로 남겨져아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진 못했다. 아마 아사코는 그 당시의 바쿠,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 류헤이가 현재라면, 바쿠는 그저 과거일 뿐이다. 우리는 간혹 과거를 그리워하느라 현재를 흘려보내곤 한다. 현재도 언젠간 과거가 될수있다는것, 그리고 지금을 그리워하느라 앞으로 다가올 현재를 낭비할 수도 있다는 걸 잊은 채로. ​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에 있던 나와 너도 흐른다. 그때의 너, 그리고 나는 이제 여.. 2021. 4. 19.
영화 ::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후기 ​ 현실에서의 삶을 꾸려가는 여자와 현실과 공상을 넘나드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남자. 현실이라는 굴레 속에 최적화되어있는 사람들에 의해 뒤처져있는 듯한 기분으로 오랜 기간 살아왔었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결혼을 해 이것이 가져다줄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여전히 누구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을 갈망했지만 그들에게 그의 가치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 많은 걸 바라왔던 걸까.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인정을 원할뿐이었는데, 현재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가능성이란 것은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어쩌면 열등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쌓여간 열등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그를 더 못난 사람처럼 보이게끔 했는지도 모른다. "영.. 2021. 4. 15.
기억은 나는 것보다 남는 게 좋더라고 몽글몽글한 리듬 속에, 또 다른 리듬이 되어주는 외국어를 들으며 맞이하는 주말의 저녁이다. 흔하디흔한 주말 저녁의 방을 홍차 향기가 잔잔하게 퍼져온다. 방문 너머 거실 쪽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멀뚱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 우연히, 기억은 살아가는 데 있어 석탄처럼 삶의 원료로 쓰인다는 말을 발견했다. 어쩌면 기억이란 걸 만들어주는 것 자체가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나를 지켜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가끔씩 내 생각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가도 오래간만에 오는 누군가의 연락에 그래도 아직 내가 누군가의 기억에 머물러있을만한 사람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스치는 요즘이다. 나는 어떤 기억 즈음에 속해.. 2021.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