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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135

2021. 09. 월간 글노트 창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끊임없이 내리던 비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던 게 아직 두세 달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선선한 공기가 반갑기까지 한 걸 보니 인간이 이렇게나 변덕스러운 존재다. 생각해 보면 사계절을 여러 번 지나쳤음에도 이전의 온도를 금세 잊어버리니. ​ 오랜만에 느껴지는 시원함 틈새로 들어오는 습한 공기가 이상하리만치 몽글몽글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익숙한 것이 익숙해지지 않을 때 비로소 그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게 모순적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네 가지의 계절을 설레는 기분으로 맞이할 수 있나 보다. ​ 스쳐 지나가듯 바뀌는 공기를 타고선 우리도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듯 그건 중요치 않은 듯. 세상으로부터 그 틈새에 끼워져있는 슬픔을 외면하는 거라고 배워.. 2021. 10. 15.
기다리다 지치는 건 약속이 아니었다 어느 가을날, 벤치에 앉아 차가워진 바람을 스치며 차분해지고 있었다.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몰라 일단 보이는 벤치에 덥석 앉았고, 언제나 이어폰으로 채워져있던 귀를 통해 바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순간 바람을 거쳐갔음에도 이 소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늘 바라왔던 순간이 이렇게나 쉽게 이루어지니 때아닌 허망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렇게나 갈망했던 것이 이렇게나 쉽게 얻어질 일인가.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라며 옥죄었던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여유에 대한 환상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것이 아닐까 싶기도. ​ 기다리다 지치는 건 약속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버스정류장에 붙어있을법한 막연한 문장만 믿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했더랬다. .. 2021. 10. 14.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이었다 칙칙한 하늘이 감흥 없이 느껴지던 어느 날. 발끝으로 느껴지던 겨울은 신발 안까지 파고들었다. 얼어붙을세라 발가락을 꿈틀거리며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로 떨어져 파랗게 질려버린 신호등 속 사람은 어딜 가려 저리 급하게 몸을 틀었는지. ​ 여전히 겨울이다. 이유 모를 추위가 우리 삶 속에 파고들어오는, 바로 그 겨울이다. 매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겨울은 왜 이리 부지런한지. 한 번쯤은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가끔은 겨울이 미워지곤한다. 좋은 경험만 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서도 나는 여전히 삶이 낯설게만 느껴져 이 추위가 언제쯤 끝이 날 지 어디까지 움츠려들어야 할지 아득하게 다가온다. ​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이었다. 따뜻함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따뜻한 사람.. 2021. 10. 12.
감정이란 쓸모없는 것일까 인간에게 감정이란 요소는 인간에게 다양한 것을 제공하는 반면, 하지만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감정이란 무언가의 효율을 올리는 데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 감정은 우리가 어떠한 일을 진행하는 데에 일관성 있게 임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지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감정이라는 요소가 꽤 큰 비중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효율만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면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의 관습에 대해 비판 없이 수용하지 않을까 싶다. ​ 어쩌면 효율을 따지기에 앞서,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 등의 감정이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이끌어낼.. 2021. 10. 6.
쉬는 것이 죄가 되는 사회 우리는 잘 쉬고 있을까.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온 우리는 쉬는 것 또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요받아왔다. 쉬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열심히라는 말과 쉰다는 말의 조합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쉬는 것조차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우리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 최근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다. 이는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인간이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겠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러한 고통 속에 잠식당하고 있다. ​ 여유가 없다. 나와 내가 대화를 나눌만한.. 2021. 9. 29.
한참 기다린 가을이 오긴 했다 집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에, 아 가을이 왔구나. 여름의 흔적처럼 여전히 드러나있는 살결에 바람이 스치자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렇게나 지루했던 여름이, 정말 지나가는구나. 옷장에서 짙은 오렌지색 카디건을 집어 들었다. 아직까지 낮에는 조금 더운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을인걸. ​ 가을의 카디건을 사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카디건을 입을 수 있는 이 계절을 사랑한다. 선선함과 살짝 더운 그 공기 사이를 오가는, 그 느낌을 사랑한다. 그동안 텁텁했던 그 공기들을 환기시키는듯한, 그 계절을 사랑한다. ​ 얼마 후면 또 가을이 그리워질 테지. 차가운 공기가 옷 틈새로 들어올세라, 옷깃을 여미기 바쁠 테지. 계절의 내음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는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라지겠지. .. 2021. 9. 23.
유토피아는 없다 인간이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의 환상은 대부분 허상에서 끝날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유토피아처럼 묘사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살기 좋은 곳일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북유럽 사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폐쇄적이다. 그들은 외부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북유럽 국가에서 혼혈인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에서 이들의 폐쇄성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규정되고 있는 북유럽이의 외모를 지닌 백인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여러 인종이 함께 살아가고 있어 일부를 제외하고는 인종차별에 대해 조심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북유럽에선 누군가가 어떠한 발언 혹은 행위에 대.. 2021. 9. 15.
되돌아가도 바꿀 수 없는 결과가 있었다 부지런히 변하는 계절을 따라 공기의 향이 변하고 있다. 시간을 주로 그때의 향과 노래로 기억하는 편이라, 매 순간 돌아오는 계절의 향은 나의 기억을 머릿속에 스치기엔 충분했다. ​ 가끔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추억에 젖어, 그땐 그랬지라는 이야기와 함께 지금 우리의 모습을 잠시 돌아보곤 한다. 우린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우린 과연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까. 그리고 만약 그 답이 그렇다 라면, 우리는 무얼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 함께 보내야만 하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추억 때문일까. 그때와 달리, 이제 노력하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는 우리의 상황이 슬프게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세상에 치여 그 시간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걸까. 그때의 순수함이라고 하기엔, 다시 지금.. 2021. 9. 9.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됐다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있다. 왠일인지 눈이 일찍 떠져 시간부터 확인했다. 새벽 5시, 당장 일어나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더 잠들기엔 애매한 시간이다. 머리맡에서 풍겨져오는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말에 머리를 했던 흔적이 여전히 냄새로 남아있었다. ​ 조금 더 평범해지기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머리를 감고나와도 냄새는 여전히 어깨주변을 맴돌고있었다. 여느때처럼 빠르게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여전히 어둠이 묻어있는 공기를 맞으며 지하철로 향했다. ​ 가끔 이렇게 변화없는 나의 삶이 두려워질때가 있다. 누군가는 덥석덥석 잘해내는것조차 꾸역꾸역 해나가는걸보면, 삶에 재능이없나 싶기도하고. 하고싶은걸 하겠다며 꾸준히 무언갈 해나가는 주변을 보면, 이도저도 아닌 나의 재능이 되려 나.. 2021. 9. 7.
2021. 08. 월간 글노트 구름 속에 갇힌 하늘을 며칠째 흘려보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 더워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에어컨 전원 버튼보다 창문 손잡이에 손이 간다. 어제의 공기를 흘려보내고 오늘을 채우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킨다. 이제 얼마 후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뜨거운 홍차를 마시고 있겠지. ​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귀찮고 성가신 것을 해나간다는 것이 모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오늘을 채워냈다. 생각해 보면 빛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과정에 결과와 비슷한 빛이 머물러있길 바라곤 한다. 그렇기에 예상치 못한 과정을 마주했을 때의 우리는 계획에 없던 무언가를 마주할 때 느껴지는 당혹스러움, 예상치 못한 것을 견뎌내야 한다는 .. 2021. 9. 2.
2021. 07. 월간 글노트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다. 내리쬐는 땡볕에 달궈진 바닥을 걷고 있노라면 발바닥이 녹아내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습하고 더운 여름 날씨도 모자라 마스크에 막혀버린 바깥공기에 남은 여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 사실 대부분의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나마 새벽의 내음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견뎌낼 수 있던 여름이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혹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엔 북적거릴 이 거리가 지금 우리 앞에 막을 내린 무대처럼 텅 비어있다는 것이 늘 신기할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 채워진 몽글거리는 내음을 맡으며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설렘은 찾아오는 잠을 외면하게끔 한다. 그 설렘이 카디건 틈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새벽의 찬 공기 때문인지, 아니면 낮보다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무.. 2021. 8. 30.
암묵적 방관의 사회적 약속, 가부장제 ​ 소설에 아로새겨진 역사 속 여성들의 삶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어머니 없는 아이들'이라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통렬한 전언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가부장제의 역사 속에서 거듭 여성들이 감당해야 하는 '폭력'의 일상이다. 이 폭력은 아이들을 집어던지는 부모의 충격적인 모습으로 소설에 재현된다. '날아서 눈더미에 박힌 적이 있'는 이순일의 유년기 기억은 세대를 넘어 다른 가정에서 성장한 하미영의 기억 속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재현된다. - 창작과 비평 192호 특집, 백지연 '삶의 전환을 꿈꾸는 돌봄의 상상력' ​ 같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성의 삶, 남성의 삶과 같은 이분법적인 분류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도 있다. 분명 각자가 지닌 고통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서로 .. 2021.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