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여운152 영화 :: '미나리(Minari)' 후기 아메리칸드림이라 했다. 평범했던 한국에서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특별한 삶을 살아보겠노라는 마음으로 떠나온 한국이었다. 반나절 이상을 떨어진 그 거리만큼 우린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과거의 기대에 얽매여 평범함을 애타게 갈구하던 나의 처지가 어느 순간 처량하게 다가오는구나. 꿈, 아메리칸드림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진실 속에서 낯선 땅, 낯선 이들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의 처지로 지극한 외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구나. 눈물이 내려앉은 이 땅에 그렇게 우리의 뿌리가 조금씩 파고들고 있었다. 사무치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악으로 고향의 내음을 여기까지 끌어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 2022. 1. 17. 영화 :: '나의 서른에게(29+1)' 후기 사람이 30세가 되면 토성의 영향을 받는대. 인생은 변화무쌍하고 헤쳐 나가야 할 일도 많아. 서른을 앞둔 자네의 인생에서 좋은 도전이 될 거야. 이번 기회를 잘 잡도록 해. - 영화 '나의 서른에게'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분명 앞자리가 바뀌는 게 처음이 아닐 텐데 뭐 그리 유난인지 주변 한숨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거나 갑자기 불행에 빠지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불안에 가끔은 정말 그런가 싶기도 했다. 스물아홉, 이십 대를 마무리 지으며 한편으로는 삼십 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지만 이를 알려주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사회는 그저 겁을 안겨주며 우리를 부추겼고, 우리는 건네받은 겁을 들고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애매한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2022. 1. 6. 영화 :: '털' 후기 모든 것은 털로부터 시작됐다. 털이 생긴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란, 원하는 걸 모두 얻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에 수많은 나날들을 갈아 넣어 털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낸 털은 나의 열등감이었다. 그렇게 욕심은 자랐다. 우리가 바라던 아름다운 모습대로 자라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어그러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나려 하겠지. 당신의 욕심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쩌면 그 욕망에 눈이 멀어 타인을 제멋대로 해석하려는 걸 수도 있겠다. 또다시 변수를 만들어가고 있다. 외부의 변수는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스스로의 욕심으로 만들어낸 변수는 타인에게 들이미는 이기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아름답지 못한 욕망을 어떻게든 뽐내려던 당신에.. 2022. 1. 3. 영화 :: '지구를 지켜라' 후기 변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인간의 이기심으로부터 지구를 구해낼 수 있을까. 욕심을 해결하기 위해 타인을 갈아 넣어 생존하는 세상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아보자는 마음에 꾸역 걸리며 살아냈던 삶은 소중한 것마저 하나씩 잘라가기 바빴다. 이제는 존재조차 성가셔진 나는 팔다리조차 당신들의 몫인 듯 찢겨나가고 있다. 잘못한 건 어느 것도 없다. 어쩌면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고작 이거인가라는 절규의 값일지도 모른다. 그저 갈려나가야 할 존재들이 부르짖는 그 모습은 그저 성가신 소음이었겠구나. 모두가 평등하다 배웠던 세상은 지독히도 불공평했다. 단지 사람들의 입막음을 위해 공정한 척 가식을 덮고 있었을 뿐. 배운 것이라곤 타인에게 이용되는 방법뿐이다. 스스로를 지켜내는 법을 배운 적조차 없는 우린 그.. 2021. 12. 28. 영화 :: '미저리(Misery)' 후기 미저리는 온전한 나의 행복이었다. 그녀는 칠흑 같던 나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던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런 미저리를 당신이 죽여버리다니. 나의 남은 삶조차 죽여버린 당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분명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님에도 주저하던 당신의 태도에 환멸을 느낀다. 나는 그저 당신의 미저리에 영원을 선물하고선 당신과 함께하려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미저리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머뭇거리는 당신의 모습은 나를 분노케했다. 당신의 수많은 팬들을 대신하는 나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당신은 그저 당신의 욕심만 채우기 바쁜 여느 작가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구나. 공포만이 남은 평화로운 차분함에 숨이 막혀온다. 나를 위한다던 .. 2021. 12. 22. 영화 :: '조디악(Zodiac)' 후기 무차별적 살인이다. 그 대상도, 이유도 알 수 없던 사람들이 무심하게 죽어 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두려움은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떠들어대던 어설픈 진실은 우리를 두려움으로 내몰기 충분했다. 당신은 결코 나를 찾아내지 못할 테지. 평범이라는 탈을 쓴 채로 당신들 속에 섞여들어 서로를 의심하는 모습에 이에 설레온다. 하찮게 바라보던 당신들의 시선을 공포에 담가두는 행위를 멈출 생각은 없다. 막연한 두려움이 커져갈수록 당신들의 삶을 쥐고 있다는 희열감에 몸서리쳐지는 걸 보니 지하실에 넣어질 것들이란 어쩌면 당신들의 두려움일지도 모르지. 하나의 피사체에 불과하던 내가 처음으로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조디악이라는 이름이 세상 곳곳에서 들려올.. 2021. 12. 14. 영화 :: '남매의 여름밤' 후기 빨간 락카가 채 마르기도 전에 내쫓겨버린 유일한 공간은 곧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리겠지. 기억과의 이별을 실감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란 우리에게 사치일 뿐이었던가. 엄마라는 사람은 우릴 버리고 떠났다. 티브이 속에서는 엄마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처럼 비치지만 그건 단지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뿐일 테지. 아니, 다른 사람들에겐 엄마라는 존재의 기억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엄마를 만나고 온 동생에게 그 분노가 향해 비수가 되었다. 그렇게 내몰리듯 도착했던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마주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긴 시간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우리가 여기에 앉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습게 느껴지지 .. 2021. 11. 30. 영화 :: '시바 베이비(Shiva Baby)' 후기 이렇게나 잔인할 일인가.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모두의 속 사정을 어찌 알 수 있겠냐마는, 당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나의 거절을 그저 한낱 투정으로 받아들였더랬다. 결국 당신들의 욕심 덕에 고통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어버렸구나. 원치 않는 공간 속에서 나는 지독한 이방인이었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좁디좁은 이 굴레 속에서 살아남기란 역시나 쉽지 않았다. 홀로 서지 못하는 인생에게 세상은 여전히 냉정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익숙함을 마주했을 때 도망치고 싶지만 갈 곳 없던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고상한 척하던 당신들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어쩌면 스스로의 가증스러움을 뽐내기 위해 타인의 가증스러움을 알면서.. 2021. 11. 25. 영화 :: ‘게임의 규칙(La Regle Du Jeu)’ 후기 아름다움이란 인간이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하나의 허상일지도 모른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마음을 아름다움으로 규정하고선 누군가로부터 우러러볼 수 있도록 하는 타인의 상대적 박탈감을 입은 채로 말이다. 멀리서 비친 아름다움을 따라 가까이 가다 보면 신기루는 사라져있고 마주할 수 있는 건 말라비틀어진 껍데기뿐이었다. 그들이 얻고 싶었던 것은 결국 누군가를 눌러 얻어낼 우월함이었다. 타인의 결핍을 이용한 과시는 결국 균열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욕심으로 채워갔던 공간은 거리를 두고 보기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었으리라. 모순적이게도 도덕과 윤리를 규정한 자들의 세상이었다. 규칙이란 것이 의미 있을까 싶다가도 무질서해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도 나름의 규.. 2021. 11. 24. 영화 :: '버닝' 후기 어디까지 진실이었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귓가에 맴도는 모든 것들이 거짓을 향하고 있다. 굳게 믿고 있었던 것들조차 하나둘 연기 속으로 자취를 감춰오고 있다. 당신이 모아둔 흔적에 낯익은 시계가 눈에 띄었다. 채도 낮은 서랍 안에서 유난히 돋보였던 촌스러운 분홍색은 확실히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단지 어울리지 않아 사라졌다기엔 그 이유가 너무나도 잔인해 다른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들이 널려있다던 세상이란다. 그 말이 비수로 날아와 당신으로부터 뽑아냈던 붉은빛은 잃을 것조차 없던 나의 분노였다. 걷잡을 수 없던 분노에 당황스러워 그 많던 골목 그 사이로 도망 쳐봤지만, 당신이 찾았다던 그 비닐하우스를 어쩌면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또다시 나.. 2021. 11. 17. 영화 :: '아멜리에(Amelie Of Montmartre)' 후기 아버지는 무뚝뚝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곤 진찰받을 때뿐이었으니 말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아버지와 함께 한다는 생각에 설레던 마음이 병으로 받아들여질 줄 그 어린아이가 알았으랴. 철저히 혼자였던 나에겐 늘 엄마가 함께였다지만 또래 친구를 대신해 줄 순 없었다. 유일한 인간관계였던 엄마와의 불안한 관계에서 오던 두려움이 나를 상상으로 숨어들게 했다. 그렇게 나는 나이가 들고 세상에 나와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갔지만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무심결에 지나쳤던 지하철역에서 당신을 발견했다. 낮게 엎드려 무언가를 찾던 당신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당신도 나와 같은 이방인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밤잠을 설쳤더랬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나의 상상 속으로 초대했다. 그래서였을까.. 2021. 11. 10. 영화 :: '라붐(La Boum)' 후기 낯선 곳에서 마주한 너는 설렘이었다. 네가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설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너의 무엇이 그렇게나 좋았던 걸까. 나는 너에 대해, 너는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던 부분이 많았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끌렸던 걸지도 모른다. 네가 있기에 발걸음을 옮겼던 그곳에서 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지루함만 남은 이 공간에서 다시금 너를 마주했을 때의 그 음악을 언제쯤 잊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도 함께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던 미래로부터 밀려오던 두려움과. 그럼에도 너와 함께하고 있다는 설렘에 중독되어갔다. 그렇게 나는 카불에 다다랐다. 단지 너를 볼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으로 나는 비행기에 올랐지만 현실은 의외로 냉정했더랬다. 나의 마.. 2021. 11. 1. 이전 1 2 3 4 5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