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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152

영화 :: '인터스텔라(Interstellar)' 후기 ​ ​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과, 실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아니, 몇십 년 전 우리가 생각했던 2020년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의 모습과 같았을까. 사람들은 미래라는 단어에 엄청난 서사가 담겨있길 바란다. 하지만 그 바람과는 다르게, 단어는 무색무취여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미래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인생은 우주를 누비는 것과 같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사람들은 앞으로 우리가 거쳐가야 할 일들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우리가 어떤 길을 거쳐가게 될지 모르는데 계획을 세워서 무엇하나. 어느 공간이든 남은 곳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 2020. 8. 24.
영화 :: '빽투더퓨쳐1(Back To The Future 1)' 후기 ​ ​ ​ ​ ​ 흔히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한 결정적인 순간들을 후회하곤 한다. 누군가는 더 용기를 내지 못한 것, 또 누군가는 너무나 용기 있었던 것 등을 말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그 근본에 있는 과거를 바꾸길 원한다. 과거라는 걷는 의외로 꽤나 민감해서 사소한 요소들 하나하나에 반응하곤 한다. 나비효과라 하던가, 작은 우연은 우리가 거치게 될 미래의 방향을 이전과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향하도록 돌려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항상 긍정적인, 다시 말해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에서도 나타나듯 그 어느 누구도 부정적인 결과.. 2020. 8. 21.
영화 :: '신의 은총으로(Grace a Dieu, By the Grace of God)' 후기 ​ 신의 은총으로 공소시효가 지났으며.... 가장 이타적이어야 할 집단에서 가장 이기적인 행동을 자행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그들은 지나버린 공소시효에 대해서도 신의 은총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누구인가. 과연 그들은 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지, 혹은 그들을 위해 희생할 신을 만들어낸 것인지 그건 신만이 알 수 있겠지. 가끔은 무자비하다던 사회보다 종교가 더 잔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때로는 종교가 신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을 믿기 위해 종교를 가지는 것인가, 혹은 종교를 가져보기 위해 신을 인정하는 것인가. 삶의 대부분을 종교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영화의 소재로 성폭행 사건의 남성 .. 2020. 8. 19.
영화 ::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Shoplifters)' 후기 우리는 행복했는데, 사회는 행복했을 리 없다고 한다. 네이버 영화 한줄평 hasi**** ​ 가끔은 행복이란 게 순서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가족이란 단어를 우선시할 것인가, 그 의미를 우선시할 것인가. 어쩌면 태어나자마자 정해지는 가족이란 건 천륜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겐 벗어나고 싶은 덫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했지만 온전한 모습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사회통념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외면당 한자들의 공동체. 사회는 그들이 가족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작고 작은 구멍으로 숨다 보니 다다른 곳.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그들. 아니, 사실 막다른 길에서 마주한 것일지도. ​ “당신 오늘 출근이 늦네.” “‘워크 셰어’를 한대.” “그게 뭔데?” “월급 주기 힘들다고 열 명은.. 2020. 8. 17.
영화 :: '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 , Nobody Knows)' 후기 ​ ​아무도 몰랐다. 아니, 모른 체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통념에 휩싸여 무언의 압박에 책임감을 내놓아야 할 것을 무의식 중에 느꼈기 때문이겠지. 사회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났다.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부재의 장기화로 인해 무기력과 분노로 변해버렸다. 어느 곳을 향한 분노일까. 엄마를 향한 분노일까, 그들을 외면한 사회를 향한 분노일까. 어디서든지 분노는 생겨 날 수 있으며, 결국 그 분노는 그들의 어머니를 향해 수렴했다. 아이들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사회로부터 그렇게 배워왔을 테니.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이 일본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가장 먼저 질타받았던 대상은 그들의 어머니였다. 물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어른으로.. 2020. 8. 14.
영화 :: '오아시스(Oasis)' 후기 ​ ​ ​ 편견을 거부하는 자들이 모여 만들어낸 편견의 세상. 평등이라는 이름의 편견은 평등을 지향하는 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가. 편견으로, 혹은 평등의 모습으로. 그들조차 다수의 경우라는 이유로 전부를 포장해버리는, 자신의 무지함을 외면하는 사람들. 지구에서 달을 보듯, 지구에서만 달을 보듯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있으며, 보여주는 대로 믿는 어리석은 자들의 공동체. 그렇다면 사랑은 아름다운 것일까, 세상이 포장해둔 것처럼. 포장지를 전부로 믿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외면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 진실 전부를 부정하는 그들. 근데 말이야, 사랑은 보기 좋은 자들의 전유물이 아닌걸. 뭐, 어떤 걸 믿을지는 당신의 선택이겠지만 말이다. 그림자가 싫다던 너.. 2020. 8. 11.
영화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The Cabinet Of Dr. Caligari , Das Cabinet Des Dr. Caligari)' 후기 과제가 아니었으면 평생 마주해 볼 수 없었던 영화. 무려 1919년에 만들어진 영화라니.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보다 더 과거에서 볼 수 있을법한 영화다. 음성을 대신한 음악으로 채워둔 오디오가 인상적이었으며, 조금은 과장된 표정과 행동이 섬세하지 않은 화질을 대체하는듯했다. 클래식 같은 것이 아닌 진짜 클래식. 요 근래 본 영화들과 다르게 선과 악의 구별이 뚜렷한 등장인물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야기. 표정과 분장으로 표현한 공포. 클로즈업으로 나타낸 칼리가리 박사의 표정은 불완전한 화면에 담아냈기에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듯했다. 사실 영화라기보단 연극에 가까웠던 영화. 아마도 무대와 같은 세트장이 배경으로 등장해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시기에는 연극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2020. 8. 7.
영화 :: '박쥐(Thirst)' 후기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온전하게 살아낼 수는 없는 운명. 선택하진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은 그를 숨게만들었다. 결국 지금까지 온전히 쌓아 왔던 것들이 모두 부질없어졌기에, 여태 쥐고 있었던 자신의 가치들을 놓아버린다. ​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타인으로부터, 태주로부터 또다시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원하는 것을 얻고, 죽음과도 멀어졌지만, 인간의 욕심은 끊임없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쉽게 실증 내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박쥐의 모습으로 그려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사람의 기억은 꽤 잔인한 것이다. 지옥이었던 시간이 이제는 그립다니. ​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존재하긴 하는가. 신부라는 직책으로 영생을 갈구하.. 2020. 8. 6.
영화 :: '친절한 금자씨(Sympathy For Lady Vengeance)' 후기 ​ 너나 잘하세요. 라디오 사연으로부터 시작해 라디오 나레이션으로 끝났다. 금자씨또한 마지막까지 한결같았다. 그렇다면 금자씨는 친절했나. 적어도 솔직하긴했다. 한결같이. 그러고보니, 무엇이 금자씨를 ‘친절하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또, 무엇이 금자씨를 복수하도록 했나. 복수는 복수를 낳고, 그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았다. 피해자이면서 또다른 가해자가 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복수는 언제나 악하기만 한걸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랬던가. 당한만큼은 아니더라도, 혹은 당한만큼 되돌려주지 못하더라도, 되돌려주려는 시도는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고, 그 아름답지않은 세상을 아름답지 않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그려내고 있다. 확실한 것은.. 2020. 8. 5.
영화 :: '복수는 나의 것(Sympathy For Mr. Vengeance)' 후기 ​ ​ ​ ​ 우연의 연속성으로 이어진 이야기.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모두가 자신이 피해자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어댄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실제로 사람을 죽일만한 사연을 지닌 사람은 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 그렇다면 복수는 누구의 것인가 고민해보게 되는 순간이다. 피해자의 것인가, 아니면 가해자의 것인가. 복수는 누가 가져갈 것인가. ​ 가해자가 없다면, 그 누구도 자신이 가해자임을 부정한다면, 이것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술래잡기였나. 그렇다, 돈이었다. 모든 게 돈으로 시작됐다. 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낸 결과라지만, 가끔씩은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도 매길 수 있게 해주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 ​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건가. 왜 하필.. 2020. 8. 4.
영화 ::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 후기 ​ ​ ​ 花樣年華[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지난날, 각자의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줄 알았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름다움인 줄 알았기에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침내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평생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른다. 그 자리에 그대로 영원할 줄로만 알았던 것들도 모두 흘러지나 간다. 세상에 영원하다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믿지 말아야 하는데 인간의 어리석음이 매번 무언가에 의지하게 하는 것인가. ​ ​ ​ ​ ​ ​ 어리석음으로 시작된, 겨우 붙잡고 있었던 빛조차 희미해질 때 즈음, 눈앞에 또 다른 빛이 그들을.. 2020. 7. 22.
영화 ::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후기 ​ ​ ​ ​ 누굴 위한 절차인가. 이것은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사람을 천천히 죽여가고 있다. 절차는 결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강자가 약자를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절차라는 것인데 이것이 약자를 보호하는 구역까지 적용해버렸다는 것은, 사회는 결코 약자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적 강자의 입장으로 만들어낸 절차를 약자가 넘어서기엔 너무나 가혹하다. ​ 몇 번의 절차를 거치며 자존심마저 사치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세상은 자존심조차 지키지 못하냐며 질책한다. 성실하게 사회에 임했던 그들에게 사회는 무엇을 주었나. 구걸하듯 자신을 증명해내야만 했던 그들은 사회로부터 무엇을 내주었는가. ​ ​ 어쩌면 그들의 운.. 2020.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