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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피아니스트(The Pianist)' 후기 ​ 갑작스러운 폭발 소리가 무뎌질 때 즈음, 내 삶도 함께 무너져내렸다. 평생을 걸쳐 들였던 나의 노력이, 이곳에선 그저 권력에 기생해 목숨을 연명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지는 오래. 나에게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의 손가락이 날카롭게 날아든다. ​ 파란 별을 짓이기는 소리가 이곳저곳 울려 퍼진다. 왼팔에 둘러진 하얀 천은 점점 구겨지고 짓밟힌다. 도랑으로 밀려나버린 우리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누구를 원망하랴. 이 모두 인간의 욕심인 것을. 지나가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당신들에게 건네받은 것은 무기력뿐이다. ​ 무얼 할 수 있을까. 그저 빵 부스러기 따위에 소중했던 것들이 하나씩 끌려가고 있다. 오랜 기간 쌓여버린 무기력은 덥수룩해져 버린 수염 속 피부처럼 잊힌지 오래다. ​ 살아있긴.. 2021. 8. 24.
영화 :: '악마의 씨(Rosemary's Baby)' 후기 ​ ​ '당신은 틀렸다.' ​ ​ ​ 나를 위한다며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의심의 근원은 나 자신일까, 주변일까. 아니면 생존을 위한 본능일지도. 사실 단순히 호의일 수도 있다. 나의 모습은 그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기쁨과 연민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뿜어진 그들의 향수일지도 모른다. ​ 그러나 아프다. 분명 그들을 마주하고 난 후로 누군가의 축복을 온전히 만끽하고 있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내가 틀리다 말하고 있다. 가장 믿었던 사람조차도. 그렇다면 정말 나는 틀렸던 걸까.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이 부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그 누구도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 벗어나.. 2021. 8. 18.
암묵적 방관의 사회적 약속, 가부장제 ​ 소설에 아로새겨진 역사 속 여성들의 삶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어머니 없는 아이들'이라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통렬한 전언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가부장제의 역사 속에서 거듭 여성들이 감당해야 하는 '폭력'의 일상이다. 이 폭력은 아이들을 집어던지는 부모의 충격적인 모습으로 소설에 재현된다. '날아서 눈더미에 박힌 적이 있'는 이순일의 유년기 기억은 세대를 넘어 다른 가정에서 성장한 하미영의 기억 속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재현된다. - 창작과 비평 192호 특집, 백지연 '삶의 전환을 꿈꾸는 돌봄의 상상력' ​ 같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성의 삶, 남성의 삶과 같은 이분법적인 분류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도 있다. 분명 각자가 지닌 고통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서로 .. 2021. 8. 12.
읽기 좋은 책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편 너는 아직도 네가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너는 왜 네 영혼 속에 있는 최상의 가치를 죽여 없애려는 거냐? 그렇게 한다면 네가 겁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특별하다. 아니, 특별했다는 과거형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꾸준히 평범해지길 강요받았고, 결국 평범과 가까워지고 있다. 아니, 사실 평범한 척을 하고 있는 걸 수도. ​ 우리는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빛을 발할 수 있는 부분은 각기 다르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평.. 2021. 8. 10.
그 많던 가해자는 어디로 갔나 꽤 오래전부터 뉴스에서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단어는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더욱더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사회의 발전 속도가 줄어들면서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삶에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용납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동반자살'이란 이름의 살인사건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 이미 죽어버린 피해자가 죽음을 원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혈연관계로부터 죽음을 강요받았는지,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자발적으로 자살을 시도 한 것인지, 가족에게 살해를 당한 후 가해자 스스로 자살한 것인지 명확한 피.. 2021. 8. 9.
한여름 밤의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가 생각조차 나지 않는 여름이다. 더위 속에 파묻혀 겨울의 알싸한 추위를 잊은지 오래다. 에어컨을 통해 나오는 찬바람은 얼마 못 가 힘없이 내려앉으니 말이다. 겨울엔 그렇게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옷깃을 여미고 또 여몄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찬 공기를 그리워하고 있으니. ​ 퇴근 후 운동을 하고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더위 속을 헤쳐 꾸역꾸역 집까지 도착했다. 세상에 있던 짐들을 내려놓듯 어깨에 올려져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선 뭐에 홀린 것처럼 샤워를 한다. 에어컨을 틀어두고 물기가 있는 머리를 툭툭 치며 맥주 한 캔을 땄다. 탁-. 청량한 소리와 함께 눌려있던 것들이 방안으로 가득 퍼져나갔다. 향긋한 과일향이 코끝을 스쳤고, 지금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어 불을 끄고 무드 등을 켰다. ​ 노란.. 2021. 8. 5.
읽기 좋은 책 :: '역량의 창조' 후기 -1- ​ 결국 가난한 국가건 부유한 국가건 인간 개발 문제가 있고 적정한 삶의 질을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몸부림이 보인다는 점에서 모두 개발도상국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시민에게 인간 존엄성과 기회를 보장해 주겠다는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한 국가는 없다. 역량 접근법은 이런 현실을 꿰뚫어 보는 힘을 제공한다. 이전까지 국가의 역량이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개인의 역량이 국가의 역량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었다. 소수가 대부분의 경제력을 소유한다는 것은 더 이상 국가에서 반길만한 요소가 아닌 것이다. 세대가 변하면서 공평과 평등이라는 가치를 바라보는 관점은 확연히 달라졌으며, 이는 세대 간의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그렇다면 무엇이 전체주의적 시각에서 개인의 역량.. 2021. 8. 3.
방도 어수선한데 무슨 생각 정리를 해 여름휴가 직전, 유난히 고단하게 느껴졌던 한주였다. 감성이란 것은 뜨거운 볕 아래를 걸어가면서 이미 메말라버릴 대로 메말라버렸다. 외근을 마치고 잠깐 들른 카페의 커피는 유난히 씁쓸했다. 떠나기 전부터 바닥나버린 감정에, 돌아오는 여름 여행을 즐길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 생각 정리가 절실해 보였다. 사실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긴 할까 의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정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부정할 수는 없는듯했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음악을 틀고 책상에 앉았지만 이리저리 쌓여있던 잡동사니들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이내 눈을 질끈 감고 그곳을 벗어났다. ​ 그렇게 떠난 곳이 제주도. 분명 이러한 상황이 오기 전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여행지였다. 이미 오를 대로 올라버.. 2021. 8. 2.
환경을 위한다는 핑계 환경문제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어오다가 코로나를 기점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도, 또 그만큼 환경 문제도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상승하였다. 그렇기에 현재 환경문제보단 개발에 신경 쓰고 있는듯한 개발도상국들을 질타하는 시선 또한 강렬해지고 있다. 물론 이들이 현재 환경문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환경문제를 모두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는 오류가 존재한다. ​ 인류는 꽤 오랫동안 문명의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그렇게 산업화의 시작을 열었던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에 존재했다. 그 당시의 이들은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에 무지했고, 자원이란 자원은 무제한적으로 가져다 자국의 발전,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자 다른 나라의 인적, .. 2021. 7. 20.
무더운 날씨도 무뎌지긴 했다 벌써 여름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차게 쏟아지던 비도 어느샌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봄에서 여름으로 옮겨가는 계절 속에서 마주했던 파란 하늘에 설렘을 느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익숙해져 버린 걸까. ​ 자극적인 것들이 이제 더 이상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을 때 즈음, 딱 그때가 익숙해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무더운 날씨도 무뎌지긴 했다. 얼마 후 더위가 한창 질려올 때 즈음 찬바람이 그 지루한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겠지. 이렇게 무언가에 무뎌질 때 즈음 또 다른 새로움이 찾아오겠구나. ​ 새로움이란 게 별거 있나. 그저 낯설게 느껴지는 게 새로운 거지. 여름밤의 공기는, 아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난여름의 새벽 공기는, 내가 그 속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설레온다. 흔치않.. 2021. 7. 19.
유럽 2-4. 스위스 인터라켄 Switzerland Interlaken🇨🇭 분주하게 움직이는 룸메들의 소리에 잠이 깼다. 다들 어찌나 부지런한지, 여행 내내 아침 여섯 시만 되면 알람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전형적인 한국인의 여행 패턴이었다. 늦잠까지 자고 나서 느지막이 도미토리를 나와 주섬주섬 준비하는 나의 여행 패턴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고 보면 여행 스타일이 이렇게나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행기간 동안 불쾌함 없이 서로 잘 지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신기할 따름이다. ​ 침대에서 내려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창문 쪽으로 스멀스멀 향했다. 어제 그렇게나 맑은 아침을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야속하게도 오늘의 하늘도 여전히 구름 속에 갇혀있었다. 두세 시간 후엔 패러글라이딩 예약이 되어있는데, 날씨가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기대했던 패러글라이딩 스케줄은 취소될수밖에 없는 노.. 2021. 7. 16.
영화 ::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후기 ​ ​ 무사히 깨어났지만, 누군가가 평생을 바쳐 그려왔던 이상적인 세상은 이제 그어디에도 없다. 그동안 믿어왔던 것들이 모두 무너졌다.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 더 이상 당연한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배척해왔던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나의 삶으로 흘러들어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혼란이라는 경험을 선물했다. 어쩌면 이 혼란은 두려움이며, 그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오랜기간 외면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순간은 과도기였다. ​ 선의의 거짓말이라 했다. 그렇다면 그 선의는 누구의 시선에서 선의인 것일까. 선택 할 권리조차 주어지지않았던 무지는 과연 당사자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당사자를 굳이 이해시키고싶지않은 그들의 편의를 위한 것일까. 견고하게 쌓은줄알았던 거짓도 결국 한낱 모래성일 .. 2021.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