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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135

괜찮은 사람은 항상 괜찮아야 되는 줄 알았다 벌써 사소한 것에 제약받으며 살아온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딱히 이렇다 할 것 없이 지나가는 한 해는,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느껴지게끔 했다. 또 이렇게 게을러도 되는 걸까 싶어 무언가를 하려 시도하다 지쳐버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마음이 또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분명 그렇게 벌여둔 일이 한두 개가 아님에도 또다시 무언가를 찾아가려는 나의 몸부림은, 나이에 걸맞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 아마도 두려움이겠지. 불안한 이 감정이 언젠가 끝나버리면 또 다른 불안이 나를 찾아올 게 분명할 테니. 불안함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안함에 적응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불안 중이다. ​ 시간이 쌓여갈수록 나잇값을 하.. 2021. 5. 27.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방황하는 거였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거린다. 어제 연차를 내어 꾸역꾸역 강남을 다녀온 것이 다행 일정 도로 날씨가 좋지 않다. 아침 일찍부터 부랴부랴 챙겨 도착한 회사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오늘은 여분의 카메라 배터리도, 끄적거리며 적어온 것도 없기에 콘센트에 배터리 거치대를 꽂아두고 때묻은 보라색 아이패드를 들었다. 탕비실 불을 켜고 테이블 의자에 앉아 유튜브 영상들을 뒤적거렸다. 사실 도착해서 어제 촬영한 영상들을 편집하려 했으나 용량이 너무 커, 아직 옮기지 못한 영상 다섯 개씩이나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카메라 배터리의 충전이 끝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마음에 드는 영상이 나오기 전까지 영상들을 손가락으로 밀어내리는 것뿐이었다. ​ 문득 어제 고궁이라도 다녀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사실 .. 2021. 5. 25.
조커에 대한 연민 조커라는 영화를 통해 악역으로만 생각해왔던 조커라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가 원작자가 의도한 대로 해석되었는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로 인해 조커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분명 조커가 한 행동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조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모순이었다. 그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살인했고, 공포로 몰아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한 분노보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 악역이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분노의 타깃이며, 그렇기에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악역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착했던 사람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억눌렸던 감정을 드러내는 이야기에.. 2021. 5. 20.
자기 계발서 중독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과도기였고, 지금도 과도기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계발을 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니즈에 맞춰 자기계발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 우리가 자기계발을 위해 접해야 할 콘텐츠 중 흔히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 계발서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이라는 각기 다른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두고선 그에 다다른 자신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이전에도, 또 지금도 수없이 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기 계발서를 하나의 종교처럼 신봉하거나, 자기 계발서를 읽고 따라 해보았지만 그 사람처럼 성공하지 않.. 2021. 5. 10.
2021. 04. 월간 글노트 이쯤 되면 날이 좀 풀릴 줄 알았는데, 공기는 여전히 차갑다. 나는 여전히 니트 한 무더기를 옷장 깊숙한 곳에 집어넣지 못했다. 5월이 끝나기 전엔 얇은 옷을 꺼낼 수 있으려나. ​ 늘, 예상했던 것은 날 비웃기라도 하듯 교묘히 빗겨나간다. 이젠 이런 것에 무뎌져 예상조차 하지 않으려 하지만, 또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선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진 않나 보구나 싶다. 가끔 이런 생각들이 옷 끄트머리를 잡고 놔주지 않는데, 언제 이렇게 겹겹이 쌓여 눌러앉아버린 걸까. 아마도 실컷 게으르고 싶은 마음을 대변해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 새로운 시도를 했다. 생각해 보면 한두 달 주기로 새로운 걸 시작했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진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이렇게나 꾸준히 새로운 걸 매번 시도.. 2021. 5. 4.
미움을 산 적 없어, 아무도 팔지 않았거든 평생을 사람과 맞대어 살아가야 하는 삶이지만, 그게 참 녹록지 않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의 연속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람 마음을 어떻게 다 따라갈 수 있을까. 사실 사람들의 방향이 각기 달라, 이리저리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데도 말이다. ​ 어릴 때는 그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줬으면 했다. 아마도 그때는 누군가가 나를 미워할 수도 있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듯했다. 누군가의 미움을 사는 게 싫었다. 딱히 이렇다 할 이유랄 건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주변 사람들도 다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그저 스스로를 미움이라는 굴레에 가둬버린 게 아니었을까. 그 속에 나를 방치해 뒀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 그 시기엔 사람과 사.. 2021. 5. 3.
5월의 신부에게 벌써 결혼이라니. 생각해 보니 앞자리가 바뀌는 두 번째 순간도 머지않았네. 청첩장 받을 때 함께 받았던 포토북을 집에 와서 찬찬히 넘겨보니 잔잔하게도 우리, 오랜 시간을 꾸준히 겹쳐왔나봐. ​스무 살이 갓 지난 우리는 분명 어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들이 점점 현실적이라는 표현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 우리도 결국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싶어.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조금씩 떫은맛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제 정말 우리, 마냥 어릴 수만은 없는 거구나. 분명 나는 이상주의자가 아닌데도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라는 뜻이겠지.​다들 결혼이란 게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이라 하지만, 그보단 조금 더 어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게 아.. 2021. 4. 29.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내가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며 이것저것 끄적여보던 중, 문득 나는 무얼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밀려왔다. 수십 번, 수백 번 두드려보아도 여전히 그대로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아서 두려움이란 감정이 간혹 나를 덮어버리려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두려움이 문 두드려오는 소리를 외면하려하지만, 오늘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 그동안 나는 무얼 했나.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해나갈 때, 나는 멈춰있었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각자의 때가 있다는 이 말이, 오늘따라 왜 이리 유난히 아프게 다가오는 걸까. 가만히 앉아서 멍 때려보기도 하고, 끄적여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이유는 여전히 찾지 못했다. 어쩌면 애초에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은게 아닐까. ​ 그동안.. 2021. 4. 22.
기분은 누군가 정해주는 게 아니었다 눈꺼풀이 유난히 무거워 축축 처지는 금요일이다. 뜬금없이 차분해지는 몸과 마음을, 다가올 주말을 위해 흘려보내는 의식을 하는 마냥 따뜻한 물에 홍차를 띄워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보곤 한다. ​ 그런 날이 있다. 누구에게도 감정적으로 휩쓸리고 싶지 않은 그런 날. 그럴 때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잠이 깼음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나른한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이불 밖의 차가운 공기를 발끝으로 툭 건드려본다. 이불 안과 밖의 온도차에 적응이 될 즈음에 긴장이 풀렸는지 배가 고파오는데, 그럴 때 자리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창문으로 향한다. 창문을 열면 이불 속에서 느낀 것과는 조금 다른 온도차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게 꼭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때로는 이런 내가 어색하게 느껴지곤 한다. 활.. 2021. 4. 20.
기억은 나는 것보다 남는 게 좋더라고 몽글몽글한 리듬 속에, 또 다른 리듬이 되어주는 외국어를 들으며 맞이하는 주말의 저녁이다. 흔하디흔한 주말 저녁의 방을 홍차 향기가 잔잔하게 퍼져온다. 방문 너머 거실 쪽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멀뚱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 우연히, 기억은 살아가는 데 있어 석탄처럼 삶의 원료로 쓰인다는 말을 발견했다. 어쩌면 기억이란 걸 만들어주는 것 자체가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나를 지켜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가끔씩 내 생각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가도 오래간만에 오는 누군가의 연락에 그래도 아직 내가 누군가의 기억에 머물러있을만한 사람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스치는 요즘이다. 나는 어떤 기억 즈음에 속해.. 2021. 4. 13.
2021. 03. 월간 글노트 생각보다 바빴던 3월이었다. 잊고 살아왔는데 지난날의 여행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문득 보여줄 때마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다. 몇 주 전보다 얇아진 겉옷을 걸치고, 밝아진 출퇴근길을 오갈 때면 이렇게나 빠르게 변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또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두워진 곳에 익숙해졌다고 이렇게 밝아진 것에 낯설어 할 일인가 싶기도 했다. ​ 올해 생일은 깊은 축하를 생각보다 여럿에게 받았다. 한때는 함께했지만 서로의 삶이 바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던, 하지만 선뜻 먼저 연락하기에 쉽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감사하게도 먼저 연락이 왔다.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해 이쯤 되면 축하조차 해주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아 그저 고마울 뿐이다. ​ 사실 인간의 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맺고 끊길.. 2021. 4. 5.
2021. 02. 월간 글노트 공기가 여전히 차갑다. 이 추위가 오랜 기간 이어질 것 같아 여전히 날 둘러싸고 있는 까만 롱패딩에서 오랜 기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더위를 피해 실내로 숨어들기 바빴던 듯한데, 지금은 그 더위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망각이라는 것이 어쩌면 나의 어리석음을 한 스푼씩 얹어주는듯하여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다. 언젠가 이 추위 또한 또 다른 기억에 묻힐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당장 눈앞에 펼쳐져 있는, 끝나지 않을듯한 추위에 한없이 웅크려들고 있었다. ​ 잊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이것조차 언젠간 잊어버릴 것이라는 것이 조금은 슬프게 느껴지는 밤이다. 나는 여전히 인간이고, 앞으로도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의 연속.. 2021.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