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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서의 기록57

🇦🇺일상이 되어버렸어 삶은 뜻밖의 일들의 연속이다. 예상치 못한 시간을 마주해 벌써 이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저 친숙했던 공간에서 더 이상 안정감을 찾을 수 없어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뿐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타인과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하기 위한 마음을 먹는 것이 가능한 시간이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연애를 시작했다. ​ 무언가에 대해 결정을 할 때에 스스로의 직감을 우선적으로 믿고 결정하는 내가, 이번 연애를 시작하기 전엔 도저히 혼자 생각하기엔 벅차 나를 가장 가까이서 봤던 두 명에게 조심스레 얘길 꺼냈더랬다. 그 둘은 비슷한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주었고, 덕분에 조금 마음이 편해진 채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더랬다. ​ 생각 속에 파묻혀지내던 기나긴 하루가 지나고 마주한 시작에 후회는 없다. 단지 여전히.. 2023. 2. 9.
🇦🇺우리 모두 이곳에서 만나 각자의 곳으로 우리들의 마지막 질롱 여행이 끝났다. 세컨비자 조건을 맞추고 나서 다시 멜번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테지만 사람 일이란 게 섣불리 장담할 수 없는 거더라. 특히 외국인으로서 이곳에 머물고 있는 우리네 인생은 당장의 내일 일조차 알지 못하는걸. ​ 유난히 이별이 많은 시기다. 우리 서로가 언젠가 다른 길을 떠나야 한다는 걸 알기에 수없이 되뇌었던 순간이었더랬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이별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매일같이 함께했던, 그리고 공유하게 된 수많은 순간들이 하나하나 곱씹어지던 밤이다. 보라색으로 물들어가던 질롱의 하늘이 유난히 야속하게 다가왔다. ​ 한두 번 마주치고 말거라 생각했던 이들 덕분에 이곳에서의 삶을 버틸 수 있었다. 우연히 쌓여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의 시간들은 영원히 멜버른에 .. 2023. 2. 8.
🇦🇺우리 사이의 거리 어제 하우스메이트와 처음으로 둘이 집이 아닌 밖에서 만났다. 사실 그게 처음인 줄 모르고 있다가 펍에 가서 얘길 하는 동안 내가 하우스메이트였던 C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이 없구나 싶더라. 아쉬운 마음에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펍으로 향했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던 우리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자주 스쳐 지나갔다. 생각보다 내가 너에 대해 많이 아는 게 없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거리를 느꼈던 그 시간 이후로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겹쳐보려 하지 않았구나. ​ 시간은 정해져있지만 그걸 어느 곳에 사용하느냐는 서로의 선택에 달렸더랬다. 나는 나의 일과 친구들을 선택했고, 너는 너의 일과 하우스메이트들을 선택했더랬다. 그땐 서로의 다름이 서로에게 불편함으로 느껴졌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거리를 둘 .. 2023. 2. 7.
🇦🇺나의 첫 하우스메이트들에게 - C에게 낯선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난 너희들이었다. 이 낯섦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불확실한 미래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서로의 삶을 어렴풋이 공감할 수 있던 우리였다. 성인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채로 타지도 아닌 타국으로 와 버텨낸 너의 시간들을 존경한다. 나는 지금 이 나이, 그러니까 나의 나라에서 내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단단해질 때까지의 시간을 지나 나름대로 견고해진 지금 호주에 도착했지만, 너는 그러한 시행착오조차 허용될 여유 없이 이곳에서 버텨냈다는 사실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더라. ​ 타국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더라. 내가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갑작스럽게 물밀듯 밀려와 나를 삼켜버리기도 하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이방인의 모습은 때때로 내 스스로 주눅 들게 하더라고. 너는.. 2023. 2. 6.
🇦🇺이제는 각자의 길을 찾아 제목을 써 두고 나니 너무 감성적이긴 하네. 한 3개월 정도 지낸 것 같은데 벌써 이곳에서 지낸지 6개월째가 되었다. 외국인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함께 놀러 다닌다는 게 때론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이제는 너무 익숙하고 친근해졌다. ​ 우린 어디로 가게 될까.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보단 따로, 각자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실감하게 된다. 우린 함께여서 행복했지만 이곳을 떠나 각자의 새로운 공간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겠지. ​ 그러니 함께할 때 최선을 다해 시간을 채워나가보자. 이곳에서마저 일하느라 함께할 수 있던 시간들을 놓쳐버린 게 아쉬우니. 후회하지 않을 순 없으니 적은 후회를 남겨보자. ​ 이곳에서 너무나 좋은 .. 2023. 2. 5.
🇦🇺호주에서 맞이하는 2022의 마지막 올해 마지막날에 뭘하고있을까란 상상을 여러번했지만 결국 5시에 출근해서 마감까지 하게될줄이야. 아니 사실 어느정돈 예상했다. 아웃백에서 일할때도 마지막날에 마감하고 다음날도 출근하는 뭐 그런 시프트를 자주 받았으니. 직장인이되면서 시원섭섭했던부분이 이런부분이긴했지. ​ 이곳에 온지 반년밖에 되지않았는데 일년정도는 보낸기분이다. 아마도 그동안 반년안에 채워뒀던 기억의 양보다 호주에서 채워냈던 기억의 양이 더 많아서일까. 한국이었으면 퇴근하고 집에서 일하느라 잘 안나왔을텐데 여기선 무조건 누구라도 만났고, 만나지못할때는 일단 밖에 나가기라도했다. 다행히 나는 일을 빨리 구했고, 그래서 사람들이랑 강제로 매일매일 마주해야했기에 다른이들보다 적은 우울함으로 호주에서의 첫 한달을 견뎌낼수있었다. ​ 행복하냐고 묻.. 2023. 2. 4.
🇦🇺나도, 너도 그리고 우리들의 20대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란 부탁을 하면서 T에게도 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했다. 사실 정 없어 보이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T에게 요청하면서도, 난 네가 아직 누군지 모르잖아라는 표현을 썼더랬다. 우리는 단지 시프트가 겹치던 그 2일뿐이었으니, 심지어 그때조차도 나의 짧은 영어 때문에 시답잖은 얘기만 했는걸. 날 모르는 건 T도 마찬가지겠지. ​ 저 말에 T가 당황하지 않았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말 이후에 오히려 더 살갑게 구는 T였다. 집이 매장 바로 앞이라 브레이크 타임에 스탭밀 테이크아웃해서 집에 가는 네가 이 이후엔 여기서 나랑 같이 브레이크 타임 내내 밥 먹으면서 얘길 했으니. 아마도 T는 내가 너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식으로 말했으면 불쾌해했을듯했다. 참 .. 2023. 1. 31.
🇦🇺기다림 끝, 그리고 의외의 답변 월요일, T에게 제안 파일을 보내두고 나서 출근을 했다. 하지만 퇴근을 하고도, 화요일이 지나도 답변조차 없던 T. 어차피 수목 시프트가 겹쳐있으니 보게 될 테니 별말 안 하기로 했다. 이게 하루 이틀 준비하는 프로젝트도 아니고, 내년까지 가야 하는 프로젝트인데 새로운 일을 구하고 여길 떠날 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할 테고 생활패턴도 바뀔 테니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전보다 늘어났음을 알기에. ​ 수요일 출근을 하고 T를 마주했을 때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했더니 T도 어색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척 인사를 건넸다. 그러더니 대뜸 나에게 와선 보낸 메시지 확인했다고 말을 하더라. 근데 본인이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말을 하더라. 이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나는 이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 2023. 1. 28.
🇦🇺또 일벌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 2023 전시 프로젝트 프롤로그 이곳에 오기 전까지 딱 1년만 타지에서 사는 경험을 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야겠다 생각했더랬지. 하지만 인생이 뭐 생각대로 흘러가주던가. 나는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곳에서 알게 된, 사실 안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들이 세컨비자를 따기로 마음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굳게 다짐했던 나의 마음이 일렁여왔다. 이렇게나 쉽사리 타인의 파동에 출렁이던 사람이었나. ​ 사실 나는 이들의 말보다 그저 내가 이곳에서 머무는 1년이란 시간이 아쉬웠는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세컨비자를 고민하고있는 D가 나에게 물어볼 때마다, 이곳에서 1년 더 머물러야 되는 이유를 찾고 있노라고 대답했더랬지. 그 이유를 너무나도 찾고 싶었지만 2, 3년 더 머문다 해도 호스피탈.. 2023. 1. 26.
🇦🇺그냥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날이 있다. 취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취한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기분이 드는 그런 날. 예상했던 것들이 들어맞으면서도 그 이유는 예상치도 못 했던 그런 날.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예상도 못했던 날에 들었던 그 기분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 오래간만에 함께 일했던 동료를 만났다. 사실 만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느라 얘가 그만두고도 연락을 선뜻 먼저 하지 못했더랬다. 그러다 무슨 일로 그 친구가 먼저 연락해 줘서 만나기로 했는데 사실 만나기 전까지도 고민을 꽤 했더랬지. ​ 고민을 했던 이유라면, 아직 미숙한 나의 영어실력. 그리고 그것 때문에 아직은 미숙한 인지력. 과연 내가 지금까지의 내 영어실력을 믿어도 될까 하는 의문. 그럼에도 내가 이곳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가장 많이 도와줬.. 2023. 1. 24.
🇦🇺언어가 달라 쉽게 알 수 없던 것들 이곳에 와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호의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를 못하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왔던 나를 배려하기 위해 상냥한 단어들을 골라 문장을 만들고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영어로 말할 때와 한국어로 말할 때 내가 느끼는 나조차도 다른데 말이다. ​ 말은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 어떤 것에 대해 주로 말을 하려 하는지 등을 통해 그 사람의 가치관까지 알아볼 수 있으니. 물론 사람이 풍겨내는 고유의 분위기를 읽을 순 있겠지만 가끔씩은 그 분위기를 무시하고 싶을 때가 있단 말이지. ​ 내가 읽었던 J의 분위기는 사랑받고자란 사람 같았다. 표현이 풍부했고, 학습된 공감 능력이라기보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2023. 1. 12.
🇦🇺값싼 우월감 이곳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직업들이 한국과는 참 다르게 인식되는구나 싶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바텐더라는 직업인데, 술에 워낙 약한 나는 바텐더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마주할 기회가 흔치않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어느 곳이나 바텐더가 있었고, 함께 일하고 있는 코워커들 대부분이 바텐더니 이들을 마주하고 지켜볼 기회가 자연스레 많아지게 됐다. ​ 이전까지는 바텐더가 단순히 술을 만들어주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이들의 주된 일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거더라. 물론 흥미로운 얘기도 있겠지. 근데 대부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주야장천 늘어놓는 이들이 대부분인듯했다. 나는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하고 싶지 않으면 테이블 속으로 숨어들 수 있지만, 이들은 그 좁디좁은 바 안에서 도망갈 .. 2023.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