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으로서의 기록57 🇦🇺서글픔을 머금으로 이렇게 글을 써보는 게 얼마 만인지. 여행으로서의 타지는 언제나 새로웠지만 하나의 삶이 되니 다르면서도 비슷한 형태로 변해가더라. 한정된 시간 안에서 무언가를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 왜 이리 부담으로 다가오던지. 아마도 내가 이젠 맘껏 즐길 수만은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나 보다. 이곳에서 마주할 낯선 이들이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이들도 나이 듦에 관대해지지 못한 건 매한가지구나. 어쩌면 우리는 그저 먼 거리에서 나고 자란, 생김새만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말을 왜 이리 당연스럽지 못하게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들 수도 있겠다. 다양한 것이라는 것은 결국 그 다양성으로 분류된 상태로 영원히 남을 수 있다는 말이라는 것을 왜 그땐 알지 못했을까. 결국 우린 .. 2023. 1. 7. 🇦🇺당연해진다는 것 이곳에 도착한지 100일이 지났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순간을 넘어서 이제는 출퇴근길에도, 시티에서 어딜 돌아다닌다 해도 구글맵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다닐 정도니까 말이다. 한국 사람들에 익숙해져 있던 눈도 이젠 이들의 모습에 점차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패밀리라고 했던 하우스메이트들도 이젠 진짜 가족처럼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물론 중간에 어색하게 느껴질만한 일이 있긴 했지만 불편한 순간을 피하고 싶다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들에겐 별거 아니게 느껴졌던 것이 나에겐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불편함을 감내하고 살아왔던 이들 사이의 갭이 잠시 서로를 불편하게 했지만 이 부분은 누군가 한 명이 희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함께하고 싶어 말.. 2023. 1. 3. 🇦🇺우리 모두 여행자로 만났으니 떠나보내야 함을 알면서도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만남 때부터 예정된 이별이었고, 언젠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날 거라는 걸 알았음에도 이별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은 늘 익숙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다음 주에 떠나보내야만 하는, 이곳에서 처음 사귄 나의 친구들. 그리고 올해 안에 떠나보내야만 하는 나의 하우스메이트들. 그리고 갑작스레 일터를 떠나게 된 나의 코워커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행자로 만나 여행자의 삶을 살아야 된다고 서로에게 외쳤음에도 막상 여행자로서 나아가는 모습을 봐야 할 때면 마음 한편 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겐 이러한 존재겠지. 나조차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면서도 타인의 부재에는 익숙지 않아 하는 것이 모순이지 않나. 인간이 이렇게나 .. 2022. 12. 31. 🇦🇺 D-1 드디어 내일, 아니 오늘 드디어 내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몇 시간 뒤에 출국이다. 오전 11시 비행기라 집에서 6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데려다주겠다던 엄마에게 호기롭게 혼자 갈 수 있다며 말했던 어리석은 과거의 내가 어이없을 뿐이다. 다행히 엄마는 그 패기를 거절해 줬고, 나는 덕분에 30인치, 20인치 그리고 온갖 전자기기들을 담은 크로스백을 메고 공항버스에 오르지 않게 됐다. 경험이란 게 이래서 중요한가 싶다. 사실 내일이라기엔 애매하게도 밤을 새우고 출발할 생각이다. 쓸데없이 예민한 잠귀 때문에 잠자리가 바뀌거나 사람들과 함께 몇 박 며칠을 있어야 할 때엔 잠에 잘 들지도 못할뿐더러 잠이 들더라도 일찍 깨버리곤 한다. 특히 비행기에서는 거의 잠을 못 잔다고 봐야 하는데, 잠들더라도 기내식에 함께 나오는 와인을 쭉 .. 2022. 6. 26. 🇦🇺 D-2 실감이 안 나 느지막한 점심때부터 들려오던 빗소리는 멈출 생각을 안 하는 것 보니 이곳의 장마가 시작됐나 보다. 우리 동네도 멜버른도 그 흐린 하늘이 연결되어 있다는 듯. 우리 집 강아지는 빗소리가 무서운 지 몇 시간째 내 의자 뒤쪽에 끼여앉아 창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곱창을 워낙 좋아해서 호주에 가기 전에 곱창을 먹고 가겠노라며 배민 앱을 켜 주문을 했다. 주문을 하고선 찬찬히 살펴보니 멜버른에 이미 곱창전골 맛집이 있었네. 확실히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는 다르구나. 일단 구글 지도에 별표를 꽃아두고선 멜버른을 떠나기 전에 가보겠노라 다짐했다. 그래도 기다리고 있어 빨리 와줘 내 야채곱창. 호주 가기 전 며칠 동안 우리 집 강아지와 함께 지내다가고 싶어 엄마가 강아지를 우리 집에 데려왔다. 엄마는 걱.. 2022. 6. 24. 🇦🇺 D-5 신경 끄려 했던 것마저 신경 쓰였다 이제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여전히 캐리어는 텅 비어있는 채로 먼지가 얹어져 있으며, 나는 여전히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조차 잡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시작한다면 어떻게든 헤쳐나가겠지만 여느 때와 같이 처음은 나에게 막막함을 제시하고 있다. 신경 끄려 했던 것마저 신경 쓰였다. 혹여 내가 놓쳐버린 게 아닐 지하는 걱정에 다시 한번 고갤 돌렸더랬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 속에서 일 년이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라 호기롭게 장담했던 나조차 홀로 남겨진 그 순간 속에선 생각에 잠겨버리곤 하더라. 변할 것 같지 않던 나의 공간은 곧 변해버릴 테고 경험하지 못한 막연함은 설렘과 걱정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고 있다. 지금보다 더 머뭇거릴듯한 앞으로의 나날들을 생각해 본다면 한번 .. 2022. 6. 22. 🇦🇺 D-7 고마워요, 다들 요즘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게 내 정신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울 때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과정이겠지. 준비를 하다 하다 끝이 없을 것 같아 꼭 해야 하는 것만 해내고 나머지는 흘려보내기로 했다. 참 신기한 게, 또 이렇게 내려놓고 있을 때 즈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들을 우연처럼 마주하게 된다. 감사하게도 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주변에 머물러주고 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어쩌면 이기적이라 느낄 수 있는 나에게, 고집이 있는 나에게 소중한 감정을 느껴줘서 고마울 뿐이다. 당신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정말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구나 느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그러니 적어도 당신들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볼게. 대학 때부.. 2022. 6. 19. 🇦🇺 D-13 아직은 설렘보단 얼마 전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두 달 전 워홀로 시드니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인데, 호주는 국제전화가 무료라 그런지 외국에 있는 것치곤 꽤 자주 전화를 걸어온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출국 날짜를 물어보던 친구에게 날짜를 말해줬다. 내 말을 듣더니 마침 잘 됐다며 자기가 시드니에서 친해진 일본인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의 친구가 멜버른으로 나랑 같은 날짜에 입국한다며 어차피 둘 다 친구 없는데 알고 지내볼 생각 없냐 물었다. 알고 지내는 것 자체는 나쁠 건 없단 생각에 알았다고 했고, 때마침 그 친구 옆에 있던 일본인 친구와 갑작스러운 전화연결까지 하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전화에 둘 다 당황하며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한 번씩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야 친구가 전화를 넘겨받았다. 워낙 성격 .. 2022. 6. 14. 🇦🇺 D-19 두려움이었다 워홀을 떠난다 하면 받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다. 무작정 다 두고 떠난다기엔 두고 가는 것들이 꽤 많기 때문에 이런 리스크를 감안하고서라도 떠나려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질문은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수많은 걱정의 형태 중 하나겠지.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면 당차게 워홀을 다녀와야 한다 말하면서도 워홀에 가서 무얼 얻어오고 싶냐는 질문엔 막연한 대답조차 하기 어렵단 사실이었다. 그저 영어, 경험이라 말하기엔 그것보다 얻어올 수 있는 게 많을듯하고, 잘 모르겠다 대답하기엔 이미 워홀을 경험한 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경험담이 세상에 널려있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조차 명확한 대답을 내밀 수 없던 이 질문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보게 됐다. 왜 나는 워홀을 떠나려 하는 .. 2022. 6. 7. 🇦🇺 D-23 퇴사 첫 주 퇴사 다음날이 빨간 날이라서 그런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긴 주말같이 느껴진다. 워낙 잡순이라 약속 없는 날엔 굳이 집 밖을 나가지 않아 평일인지 주말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로 격리했던 그 생활을 며칠간 거의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영상편집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당장 레이블 멤버들과 함께했던 촬영보 편집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으며, 지인 결혼식 영상편집도 빠르게 해내려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올라가야 하는 영상들, 그 사이에 틈틈이 플레이리스트 만들어 올릴 곡들도 수집하고 있기도 하고. 겸사겸사해보고 싶은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퇴사를 하고 시간이 생기니 어찌어찌 다른 일거리들이 생기는 걸 보니 적어도 난 굶어죽진 않겠다.. 2022. 6. 3. 🇦🇺 D-26 퇴사 퇴사를 했다. 내일채움공제때문에 꾸역꾸역 다녔는데 드디어 퇴사 날이 오는구나. 시원섭섭 중에 섭섭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퇴사는 그저 시원함만 줄 뿐. 퇴사하는 날조차 왜 이리 해야 할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분명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꼭 비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분들 덕에 퇴사하는 날까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자신의 실수령액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단 말을 듣고, 내가 지금까지 받았던 실수령액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래전 다녔던 알바조차 거래명세서를 메일로 보내주던 곳이라 오래된 메일함에서 그 메일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 참 꽤 오래 일했구나. 고3 수능이 끝난 그 해 11월부터 지금까지 6개월을 .. 2022. 5. 31. 🇦🇺 D-31 커먼웰스 오류 이제 하나하나 정리되어가고 있다. 오늘은 시간이 좀 생겨 커먼웰스 계좌를 만들어 두기로 했다. 대부분 2~3주 전에 신청해두고선 출국을 한다던데 3주나 4주나 별 차이 없겠지. 근데 웬걸, 계속 오류가 뜬다. 혹시나 해서 '커먼웰스 오류'라 검색해 보니 나만 이런 오류가 뜨는 게 아니었나 보다. 여러 번 시도하다가 계좌개설한 사람도 있고, 포기하고선 호주 입국 후 만든 사람도 있단다. 아마 나는 후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니 어차피 호주 입국 후 만들 거라면 다른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것도 괜찮은듯싶었다. 커먼웰스뱅크의 장점이라면 입국 전 한국에서 만든 후 현지에서 카드를 찾아 바로 쓸 수 있다는 건데, 이게 안된다면 꼭 여기서 만들 필요는 없지. 호주는 계좌 유지비라는 게 있는데, 말 그대로 계.. 2022. 5. 26. 이전 1 2 3 4 5 다음